김병진 ㈜동진쎄미켐 CSEO
[환경일보] 한국 산업현장의 사망사고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악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산재로 고통받는다. 정부는 법규를 강화하고, 국회는 제도를 개편하며, 기업들은 Compliance 조직을 늘려 대응해왔지만, 현실의 사고는 여전히 되풀이된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이다. 안전은 외부에서 ‘시혜’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 스스로 지켜야 할 주권이기 때문이다. 제도나 규제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진정한 안전은 외부 권력의 강제보다 현장의 자율과 주체성에서 비롯된다. 안전·건강을 지켜내는 권리, 다시 말해 ‘안전·건강 주권’은 외부가 아닌 사업장 내부에서 행사될 때 비로소 실효성을 갖는다.
이제 그 해법을 Sovereign AI가 제시하고 있다. Sovereign AI는 거대 플랫폼 기업이 제공하는 범용 AI나 일률적인 외부 규제용 AI가 아니다. 사업장 자체의 데이터, 현장의 맥락, 조직의 문화 속에 뿌리내려 작동하는 AI다. 이 AI는 위험 징후를 미리 감지해 경보를 내리고, 근로자 개개인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로 설명하며, 누구나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 도구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Sovereign AI는 규제가 아닌 동반자, 외부의 지침이 아닌 현장의 감각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안전 인프라다.
‘안전·건강 주권’, 사업장 내부에서 행사될 때 실효성 가져
안전·건강 주권은 세 가지 차원에서 정의된다. 첫째, 사람의 주권이다. 이는 모든 근로자가 위험을 발견했을 때 작업을 멈추고, 불안전한 행동이나 설비를 개선할 권리를 의미한다. 눈앞의 이익이나 속도보다 생명을 우선할 권리, 이것이 안전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둘째, 데이터의 주권이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환경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해당 사업장이 축적한 자산이자 생존을 위한 지식이다. 외부에 종속되거나 방치되지 않고, 사업장 스스로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을 때 그 데이터는 진정한 가치로 전환된다.
셋째, AI의 주권이다. 범용적인 지식이 아니라 우리 사업장의 위험 패턴, 우리 근로자의 행동 특성, 우리 설비의 이력에 맞춘 맞춤형 안전 지식을 AI가 축적하고 제공해야 한다. Sovereign AI는 그 자체로 현장의 안전 교사이며, 경영진의 전략 파트너이자, 무엇보다 노동자의 생명을 지켜내는 든든한 방패다.
국가와 기업이 지향해야 할 결론은 명확하다. 사망사고 ZERO. 더 이상은 한 사람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산업재해’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산업사회의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단기적 생산성이나 단순한 효율에서 오지 않는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 존중받을 때 기업은 신뢰를 얻고, 장기적으로 더 큰 경쟁력을 갖는다. Sovereign AI는 바로 이 지점을 실현하는 주권적 도구다.
AI는 인간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주권을 확장하는 도구여야 한다. Sovereign AI는 위험을 사전에 식별하고, 데이터를 자산으로 전환하며, 주체적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의 생명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지켜내는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지금이야말로 산업현장이 외치는 “안전·건강 주권”을 국가와 기업이 응답해야 할 시간이다.
성과의 속도보다 실행의 확실성, 그리고 세대를 이어가는 안전 경영이야말로 궁극의 해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