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선두
한은, 2021년 기후정책 상당수 이행 안 돼

ESG 공시 의무화 시기 연기 등 점수 낮아
“한국 경제 규모 대비 실행력 부족” 지적

아세안3+ 금융당국 기후정책 점수표 /사진제공=녹색전환연구소
아세안3+ 금융당국 기후정책 점수표 /사진제공=녹색전환연구소

[환경일보] 국제 싱크탱크가 아세안+3(한국·중국·일본+아세안 10개국) 13개국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관의 기후대응 정책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경제 규모와 제도적 역량에 비해 중하위권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한국은행과 금융위가 제도적 기반은 마련했지만 실행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으며, 반면 중국·일본·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은 선두그룹에 포함돼 녹색금융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3일 녹색전환연구소에 따르면, 국제 싱크탱크 포지티브머니는 최근 이러한 내용이 담긴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녹색중앙은행 성적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녹색전환연구소 등 국내 기관의 전문 자문을 받아 작성됐다.

기관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아세안3+’ 국가들이 국제 기후금융 전환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최초로 평가했다. 아세안3+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 3국을 모두 묶어 부르는 말이다.

기관은 보고서에서 아세안+3은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으면서 동시에 기후위기에 따른 물리적 피해에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들 국가들이 어떤 경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여부가 달라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먼저 포지티브머니는 아세안+3 13개국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관의 녹색중앙은행 정책 실행 수준을 4개 분야로 나눠 평가했다. 그리고 점수를 기반으로 국가들을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눴다. ▷선도그룹(Leading group) ▷중간그룹 (Middle group) ▷후발그룹(Lagging group) 순이다.

먼저 선도그룹은 말 그대로 녹색금융 투자나 규제 등 제도 설계나 실행 모두 국제적 모범을 보인 수준이다. 중간그룹은 일부 제도나 정책이 도입되기는 했으나, 실제 실행력이 아직 미흡한 곳이다. 후발그룹은 제도 설계와 시행 모두 초기 단계이거나 사실상 부재한 곳들이다.

분석 결과, 한국은 태국과 함께 중간그룹에 분류됐다. 한국보다 점수가 낮은 국가는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브루나이·미얀마 등 5개국이었다.

포지티브머니는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 중 196억 달러(약 27조원)를 ESG 자산으로 편입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석탄 등 화석연료 기업 투자를 배제하는 조치를 내놓은 점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녹색여신 관리지침’을 발표한 점 역시 높이봤다. 이 부문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금융위원회가 ‘기후리스크 관리 지침서’를 발표하고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보완해 녹색투자 확대에 나서려 했다는 점 역시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정책 이행 부문은 낮은 점수를 받았다. 녹색여신 관리지침의 경우 실제 대출 실적과 연계되지 않아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녹색채권 발행량이 부족한 점 역시 지적됐다. 2021년 한국은행은 공개시장운영에서 증권대차 담보 대상증권 등에 녹색채권을 추가할 수 있는 방안을 약속한 바 있으나 이행되지 못했다.

ESG 공시 의무화 시기 역시 2026년 이후로 연기하는 등 정책 실행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밖에도 금융기관 탄소중립 목표 공개 의무화 등 금융당국의 2050년 탄소중립 경로를 이끌 구속력 있는 핵심정책이 부족한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 결과, 한국은 GDP 규모와 역사적 온실가스 배출량 기여도에 비해 녹색금융 정책이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아 아세안3+에서 중하위권을 기록했다.

포지티브머니는 “한은과 금융위가 통화 운영과 규제 프레임워크를 통해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면서도 “실행력이 초기 목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선두그룹에 포함됐다. 중국은 녹색대출 비중을 높이는 정량적 규제와 녹색채권 담보 인정 등 강력한 제도를 마련한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본 역시 중앙은행과 정부가 긴밀히 협력해 녹색금융 촉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녹색중앙은행 성적표’ 보고서 표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녹색중앙은행 성적표’ 보고서 표지

보고서는 또한 아세안 주요국 가운데 일부는 한국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싱가포르 등 아세안 4개국 역시 선두그룹에 포함됐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녹색채권 발행과 ESG 공시 제도를 빠르게 도입했고, 필리핀은 중앙은행이 모든 은행에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 기반 전환계획 제출을 의무화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지속가능금융 로드맵을 추진하며, 은행권에 ESG 리스크 관리와 공시 의무를 강화하고 녹색채권 발행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한국 금융당국이 녹색국채 발행과 금융시장 유통을 확대하고, 녹색대출 실적과 직접 연동되는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ESG 공시 의무화 같은 구속력 있는 제도의 조속한 도입이 강조됐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에서의 신뢰와 위상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번 보고서 자문을 맡은 최기원 경제전환팀장은 “한국은행의 기후위기 대응 수준이 주요 아시아 중앙은행들에 비해 뒤쳐져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역사적으로도 탄소배출량이 많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대한민국의 중앙은행과 금융당국기관이 더 많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행은 2021년 검토하겠다고 한 기후정책들을 더 적극적으로 강도 높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2050년까지 세계적으로 연간 9조2000억 달러(약 1경2000조원) 규모의 녹색투자가 진행돼야 할 것으로 봤다. 이 중 3조1000억 달러(약 4276조원)가 아시아 일대에 투자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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