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선별원 4인의 증언
장갑도 ‘빨아 쓰라’는 현장···
장비 부족, 안전기준 부재 논란
측정 불가 악취, 지하화로 위험 가중
반복되는 산재 속 방치된 폐기물 처리시설

[환경일보] “머리에 수건을 둘러도 일하고 나면 땀에 다 젖어요. 악취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구더기, 파리와 싸우며 일합니다.”
도시는 매일 쏟아지는 쓰레기를 멈추지 않고 돌려내지만, 그 뒤편에는 재활용 선별원들의 땀과 고통이 쌓여 있다. 땀에 젖은 수건을 수차례 갈아야 하고, 악취와 구더기 속에서 장갑조차 부족한 채 일하는 현실도 드러났다. 재활용 현장은 단순한 노동 문제가 아니라, 안전과 자원순환 사회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정책 전환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 ‘계절의 목소리’에서 열린 여성환경연대 주최 토크 콘서트 ‘재활용 선별원 - 자원순환의 최전선에 선 여성노동자’에서 재활용 선별원 4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총 3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선별원들은 현실에서 겪는 위험과 어려움을 직접 증언하며 재활용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고발했다.
토크 콘서트에는 하남환경기초시설과 구리자원회수시설에서 근무 중인 함순이, 유지연, 찬트라, 최유은 선별원이 참석해 선별장의 환경, 산재 위험, 보호구 미지급, 시설 지하화에 따른 문제 등을 조목조목 짚었다.
구리자원회수시설에서 근무하는 최유은 선별원은 “폐기물을 골라내는 동안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숨이 가쁘다”며 “여름엔 폐기물에서 나는 악취가 심각하고, 구더기와 벌레가 들끓는다”고 증언했다. 하남환경기초시설의 함순이 선별원은 “지하 25미터에서 일하는데, 환기가 안 돼 땀에 젖은 수건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 장비 부족도 문제로 지적됐다. 찬트라 선별원은 “장갑을 일주일에 한두 개만 주고 ‘빨아 쓰라’는 말까지 들었다”며 “토시나 마스크도 예전에는 지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위탁업체 교체와 노동조합 활동으로 일부 개선됐지만, 현장의 기본적 안전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단순 노동 여건에 그치지 않는다. 수도권과 광역시들이 폐기물 처리시설을 지하화하는 가운데, 선별원들은 화재·폭발 등 사고 발생 시 대피가 어렵다는 점을 우려했다. “소방 훈련은 하지만, 진짜 불이 나면 지하 8층에서 계단으로 뛰어올라갈 수 있겠느냐”는 증언은 현장의 구조적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도 현장 증언에 공감하며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을 촉구했다. “제조업 공장은 실내 공기 관리를 하는데, 왜 폐기물 처리시설은 방치되고 있는가”라며 산업안전보건 기준 마련을 요구했고, 또 다른 시민은 “선별 노동이 없다면 도시는 멈춘다”며 이들의 노동을 ‘도시를 돌보는 활동’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토크 콘서트를 주관한 여성환경연대는 폐기물 처리시설의 안전기준 마련과 지자체 직고용, 직영 운영, 현장 감독 강화를 포함한 정책 제안을 담은 시민 서명을 국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단체는 “선별원들의 증언은 개인의 고통을 넘어, 자원순환 사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며, “지금은 현장을 위한 정책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