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생물자원관, 미래 보존 노력의 최전선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에코나우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국립생물자원관의 전경 /사진제공=국립생물자원관
국립생물자원관의 전경 /사진제공=국립생물자원관

[녹색기자단=환경일보] 최혁주 학생 기자 = 과학자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 부른다. 지구의 역사상 다섯 번의 대멸종이 소행성 충돌이나 거대한 화산 폭발 같은 자연적 대격변에 의해 일어났다면, 여섯 번째 멸종의 원인은 명확하게 단 하나의 종, 바로 인간을 지목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이름도, 특징도 기록되지 못한 생명들이 인류가 만든 개발의 소음과 오염, 기후 변화 속에서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한번 사라진 생명은 인류의 모든 기술로도 되돌릴 수 없으며, 그 안에 담긴 수백만 년의 진화 정보와 미래 신약의 가능성 또한 영원히 묻히게 된다. 이는 마치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어진 거대한 도서관이 매일같이, 그것도 가장 귀중한 고서들부터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이 거대한 상실의 흐름 앞에서,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멸종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우리 곁의 생명을 하나라도 더 기록하고 미래를 위해 보존하려는 노력의 최전선에, 대한민국에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불리는 국립생물자원관이 있다.

수백만 개의 이름표, 미래를 위한 생명의 기록

국립생물자원관의 심장부는 일반 관람객의 발길이 멈추는 곳, 그 너머에 존재한다. 철저한 보안과 항온·항습 시스템이 24시간 가동되는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거대한 도서관의 서고처럼 끝없이 이어진 표본 보관장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바로 국립생물자원관이 ‘한반도의 노아의 방주’라 불리는 이유를 증명하는 핵심 공간, 수장시설이다. 성경 속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의 위기 앞에서 세상의 모든 동물을 한 쌍씩 태워 미래로 보냈듯, 이곳은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한반도의 생명들을 표본의 형태로 온전히 보존해 미래 세대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것은 단순한 생명의 흔적이 아니다. 투명한 액체 속에 잠긴 물고기, 날개를 곱게 편 나비, 압착되어 저마다의 무늬를 간직한 식물 표본 하나하나에는 고유한 ‘이름표’가 붙어있다. 거기에는 종의 이름뿐만 아니라, 채집된 시간과 장소까지 한 생명이 지구상에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정보가 담겨있다. 이 작은 이름표들이 모여 현재 약 수백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을 이룬다. ‘수백만 개의 이름표’라는 소제목을 붙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단순히 수량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이름도 없이 사라져갈 뻔한 수많은 생명에게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 존재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약속의 증표인 셈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자산이 된다. 만약 훗날 한반도의 어떤 식물에서 난치병을 치료할 신약 물질이 발견되었을 때, 이 이름표가 붙은 표본은 그 식물의 주인이 우리에게 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 즉 ‘생물 주권’의 근간이 된다. 결국 수장고에 빼곡히 쌓인 수백만 개의 이름표는, 멸종의 시대를 견디고 미래를 열기 위해 우리가 만든 가장 조용하고도 위대한 기록인 것이다.

섬과 연안의 기록, 잠자는 보물을 깨우다.

거대한 '노아의 방주'가 인천의 국립생물자원관 본관이라면, 전국의 주요 거점에는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생명들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지역 방주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2020년 목포에 문을 연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아주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바로 대한민국 생물다양성의 보고이자, 육지와는 또 다른 진화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섬과 연안' 생물자원을 전담하는 것이다.

이곳 연구자들의 임무는 명확하다. 바로 다도해의 섬과 갯벌을 누비며 국가 생물 주권을 확보하고, 의약품이나 미래 농업 기술 등에 활용될 '지속가능한' 가치를 발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발굴된 섬 생명의 소중한 가치는 연구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자원관의 전시실을 통해‘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물로 재탄생해, 미래 세대에게 우리 곁의 보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등대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방주는 멸종의 바다를 항해한다.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대, 모든 것이 빠르게 사라지고 잊히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무력한 일은 체념일 것이고, 가장 적극적인 일은 희망을 만드는 것일 터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멸종에 맞서는 가장 강력하고도 진실한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갈 생명에게 이름표를 붙여주고, 그 안에 담긴 고유한 역사를 보존하며, 미래의 가치를 찾아내는 모든 과정이 바로 희망을 기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희망은 인천의 거대한 수장고나 복잡한 연구 보고서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남 목포의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을 찾았을 때, 나는 그 희망이 우리 곁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숨 쉬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시실에서 마주하는 우리 지역 섬과 갯벌 생물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쏟아낸 땀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곳을 방문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우리 땅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기록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응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결국 노아의 방주는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던 유물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생명의 가치를 우리가 기억하고, 그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비로소 전설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다가오는 겨울, 민둥산에 나무를 심듯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을 방문하여 거대한 방주에 널빤지 하나를 힘껏 보태보는 건 어떨까?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