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물결의 두 이름, 억새와 갈대 이야기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에코나우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녹색기자단=환경일보] 김하진 학생기자 =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가을의 한복판, 전국의 명소들은 은빛과 금빛으로 물든 식물 군락을 보려는 나들이객으로 붐빈다. 사람들은 흔히 이 황홀한 풍경을 ‘갈대밭’이라 부르며 추억을 남기지만, 사실 그중 상당수는 갈대가 아닌 ‘억새밭’일 가능성이 높다. 가을의 정취를 대표하는 두 식물은 은백색의 꽃차례를 피우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까지 꼭 닮아, 헷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겉모습의 유사함과 별개로, 억새와 갈대는 생태계에서 전혀 다른 서식지와 생존전략을 가진 별개의 종이다. 우리가 무심코 하나로 오해했던 두 식물의 진짜 모습을 알아보는 것은, 우리 주변의 자연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는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꼭 닮은 두 식물, 알고 보니 ‘한집안’

갈대와 억새가 이토록 닮은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둘 다 같은 ‘벼과’ 집안이기 때문이다. 벼과 식물들은 대부분 속이 빈 줄기에 마디가 있고, 길고 좁은 잎이 자라며, 가을이 되면 작은 꽃들이 모여 달리는 이삭을 피우는 특징이 있다. 갈대와 억새는 이러한 벼과 식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억새와 갈대가 보여주는 특유의 물결치는 모습은 작은 꽃들이 피고 진 자리에 씨앗이 익어가면서 함께 자라난 솜털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솜털이 햇빛의 각도에 따라 다채로운 색감을 뽐내며 가을 풍경을 완성하기 때문에, 같은 특징을 공유하는 두 식물을 우리가 헷갈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갈대와 억새 구분하기

그렇다면 갈대와 억새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모습에서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가장 먼저 꽃의 색이다. 억새는 은백색이나 뽀얀 흰빛을 띠는 반면, 갈대는 고동색이나 회갈색 빛이 돌아 상대적으로 어둡다. 줄기 또한 억새가 비교적 가늘어 부드러운 인상을 주지만, 갈대는 더 굵고 튼튼하여 단단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겉모습의 차이보다 더 확실하고 쉬운 구분법은 바로 이들이 뿌리내린 서식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억새는 산이나 들처럼 물기가 적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라며, 건조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뿌리를 깊게 내리는 생존 전략을 택했다. 반면 갈대는 강가나 습지 등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 뿌리가 물에 잠겨도 숨을 쉴 수 있도록 공기를 저장하는 ‘통기조직’이 발달했다. 이 때문에 “물가에 있으면 갈대, 산에 있으면 억새”라는 말만 기억해도 대부분 경우 틀리지 않을 수 있다.

억새 / 사진제공 = 공유마당
억새 / 사진제공 = 공유마당
갈대 / 사진제공 = 공유마당
갈대 / 사진제공 = 공유마당

‘땅의 개척자’ 억새, ‘물의 수호자’ 갈대

각자 다른 환경에 적응한 두 식물은 생태계에서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억새는 척박한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땅의 개척자’다. 산불이나 벌목으로 황폐해진 땅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리는 ‘선구식물’ 중 하나로, 토양 유실을 막고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과거 화전과 벌목으로 인해 빈 땅이 된 강원도 정선 민둥산은 그 자리에 억새가 들어서게 됐고, 어느새 매년 4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성장하게 됐다.

갈대는 탁월한 수질 정화 능력을 지닌 ‘물의 수호자’다. 습한 곳에서 서식하는 갈대는 특히 뿌리에 잘 발달돼 있는 통기조직에 산소를 저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뿌리 주변으로 산소가 유출된다. 이로 인해 갈대의 뿌리 주변에 있던 미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미생물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수질 정화가 이루어진다. 순천만국가정원은 바로 이 갈대의 능력을 활용하여 오염됐던 하천을 정화했고, 그 결과 수달과 은어가 다시 찾아오는 건강한 생태계로 복원할 수 있었다.

순천만 갈대습지 / 사진제공=공유마당
순천만 갈대습지 / 사진제공=공유마당

생물다양성,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제 가을 여행에서 억새와 갈대를 마주한다면, 우리는 그 차이를 자신 있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갈대와 억새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은 단순히 두 식물을 구분하는 지식을 넘어, 겉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무심코 하나로 묶어버렸던 생명들에게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억새가 척박한 땅을 일구고 갈대가 오염된 물을 정화하듯, 우리 주변의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태계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리는 소중한 구성원이다.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닌, 이처럼 우리 곁의 생명 하나하나의 이름과 역할을 제대로 불러주는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