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배 농축생태환경연구소 대표

농업 체질 바꾸는 기술 해법 토양의사,
보조금 농업 아닌 기술 농업 강화해야

이덕배 농축생태환경연구소 대표

[환경일보] 지난 10월 15일 상지대학교에서 일본토양개량자재협의회 회원에게 한국의 여과액비 활용 절차, 시설원예작물의 비료값 절감 효과, 횡성군의 정책사업 성과 등을 발표했다. 발표장에서 만난 일본 토양의사(Soil Doctor) 협회 노구치(Noguchi) 회장과 OECD 국가 중 질소 수지 1위, 인산 수지 2위인 한국의 문제 해결 방안을 협의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13년 전 농업지도자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토양의사’ 제도를 기획했고, 일본 토양협회가 수행하고 있다. 토양의사 1급은 토양 박사, 2급은 토양 마스터, 3급은 토양 어드바이저라 칭하며, 수준에 따라 토양진단과 처방, 작물 생육 개선, 토양 만들기를 수행하고 있다. 다만, 정부 단위 양분수지 개선과 온실가스 감축 사업과는 연계가 약해 보였고, 토양의사 등급 명칭도 1급 의사, 2급 레지던트, 3급 인턴으로 구별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필자는 2023년 축산환경관리원의 용역 연구에서 현행 가축분뇨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 방안도 검토했다. 동법 시행 규칙 제38조 기술 관리인의 자격 기준은 수질환경산업기사, 폐기물처리산업기사, 토목산업기사, 공업화학산업기사, 화공기상 이상의 자격을 가진 자와 환경기능사 또는 화학분석기능사로서 해당 분야에서 2년 이상 실무에 종사한 자로 명시하고 있다. 퇴비와 액비 처리는 가축분뇨 발생량의 86.6%를 처리하고 있지만(2022년 농식품부), 퇴비와 액비의 제조와 활용 관련 기술자 활용은 아예 무시되고 있었다.

퇴비와 액비는 양분 함량이 일정하지 않고 성분도 표시하지 않아, 작물 재배 농가가 잘 사용하기 어려운 비료이다. 반대로 화학비료는 값도 비싸지 않고 일정한 양분 함량에 부피도 작아 취급이 간편하다. 그래서 스마트 농업인이나 규모화 농업인, 고령 농업인들은 화학비료를 선호한다. 이런 이유로 축협 자원화 사업장에서 연간 생산물의 21%가 소비되지 못하고 있다(2023년 축산환경학회 춘계 심포지엄). 퇴비 소비 촉진을 위해 발전용 연료화 기술, 바이오차 기술이 제시됐으나, 고비용으로 인해 실용화도 요원하고, 실제 이 기술을 활용한 가축분뇨 처리량은 통계로 잡히지도 않는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매년 퇴비와 액비의 사용과 관련된 농화학, 시설원예 분야 기술사와 기사 등을 배출하고 있어서 이런 자격자들에게 토양의사 임무를 부여할 수 있다. 토양의사 임무는 현행 비료 판매량을 비료 사용 통계로 사용하는 잘못부터 바로잡아, 정부는 정확한 양분수지와 비료 유래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정보를 이용하면 시청과 군청, 구청 단위의 양분수지 개선, 아산화질소(N2O) 배출량 감축, 수질 정화 비용을 절감하는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퇴비와 액비는 비료의 일종인 만큼 농작물에 필요한 질소와 인산, 칼리 함량이 보증된 제품이 생산돼야 하고, 이런 퇴비와 액비를 농업인들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서비스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네덜란드는 작물 및 축산농가의 양분 관리 연결체(Cumela)와 NVWA 소속 환경경찰이 농가 양분회계를 감시한 결과, 양분수지를 대폭 개선한 성과를 얻었다.

농촌진흥청 흙토람의 비료사용처방서는 농작물의 양분 요구량과 토양 중 양분 함량, 비료 중 성분 함량을 고려해 사용량을 제시하고 있다. 토양의사들이 비료사용처방서를 활용해 현장 지원을 한다면 농경지에 양분 함량을 균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농지에 집적된 염류 농도도 낮추고, 여과 액비와 같이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새로운 비료 사용도 도울 수 있다. 또한 필지별로 인산이 많은 퇴비와 칼리가 많은 액비를 조합해 사용하는 기술의 실행도 가능하다. 농경지를 살리는 퇴비와 액비의 사용 기술이 늘면, 작물농가는 토양 염류집적 방지와 비료값 절감, 농산물 안정 생산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축산농가는 사육환경이 개선되고, 가축분뇨 공공처리장은 분뇨 위탁 처리 수익이 늘고 시설 운영비도 줄이는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대만은 한국보다 5년 늦게 1인당 GDP 3만 달러에 진입해 내년이면 4만 달러 클럽에 가입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3만 달러에 갇혀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후진국이 공업화를 통해 중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지만, 농업과 농촌의 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이 4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보조금 농업’이 아닌 ‘기술 농업’을 강화해야 한다. 토양은 생태계에서 1차, 2차, 3차 생산자의 활동처이자 안식처이다. 시급히 토양의사 제도를 신설해 환경 경제적으로 효과가 우수한 ‘기술 농업’ 체계를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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