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의무 설치에도 불구, 화재 우려로 가동 외면

[환경일보] 전국 공공기관들이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를 의무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에도, 정작 전기안전관리 주무기관인 한국전기안전공사조차 설치한 ESS를 가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정 의원(더불어민주당, 파주시을)이 한국전기안전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사는 전북 전주 본사 부지에 250kW 규모의 ESS를 설치했지만 화재 위험 등을 이유로 현재까지 가동하지 않고 있다. ESS 안전관리의 총괄기관으로서 검사와 기준 제정 권한을 가진 기관이 스스로 ESS 운영을 꺼리는 모순된 상황이다.
한국전력공사, 전력거래소, 한국동서발전 등 주요 에너지 공공기관들 역시 설치한 ESS를 장기간 미가동 상태로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SS 화재는 2018년 16건, 2019년 11건 등 초기 몇 년간 집중적으로 발생했으나, 이후 정부와 업계의 안전대책 강화로 2020년과 2021년 각각 2건, 2024년 5건, 2025년 8월 기준 6건으로 크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초기 사고의 여파로 인해 여전히 ESS를 ‘잠재적 위험시설’로 보는 인식이 남아 있다.
정부는 2021년부터 계약전력 2000kW 이상 공공건물에 계약전력의 5% 이상 ESS를 의무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24년 기준으로 전체 의무대상 308개 기관 중 설치를 완료한 곳은 109곳에 불과하며, 199개 기관(64.6%)은 아직도 이행하지 않았다. 제도 시행 4년이 지났음에도 공공부문 ESS 설치율은 4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처럼 ESS 화재는 줄었지만 불신은 여전히 남아, ESS 의무 설치 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SS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분산형 전원 체계 구축의 핵심 인프라이지만, 공공기관조차 사용을 꺼리는 현실에서는 민간 확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안전을 관리하고 국민 신뢰를 확보해야 할 기관들이 오히려 운영을 꺼려 불안감을 확산시키는 것은 정책 일관성에도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정 의원은 “ESS 화재는 기술 개선으로 크게 줄었지만, 안전관리 기관조차 ESS를 켜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요원하다”며 “정부와 공공기관이 먼저 ESS의 안전성과 신뢰를 입증해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ESS 확산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