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슈퍼온실가스 배출 급증에도 감축 사업 중단

[환경일보]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3년간 1000억원이 넘는 슈퍼온실가스 감축 기금을 묻혀둔 사실이 드러났다. 감축 사업을 중단한 채 기금을 쌓아두고 있는 사이, 수소불화탄소(HFCs) 배출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1만 배 강력한 온실효과를 내는 HFCs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5%를 차지하게 된 현실은 심각하다. 기후위기의 원인 중 하나인 슈퍼온실가스 관리가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산업부는 ‘산업기술진흥 및 사업화촉진기금’ 내 특정물질사용합리화계정에 1121억원을 적립하고도, 2022년 이후 감축 관련 주요 사업을 모두 중단했다. 현재 집행된 예산은 전체 기금의 0.018%인 2000만원에 불과하다. 그 결과, 대체 냉매 기술개발과 설비 전환을 추진하던 기업들은 지원이 끊기며 사업을 접거나 해외로 방향을 돌렸다. 정부가 적립된 재원을 활용했다면, 냉매 대체 기술을 앞당기고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기회를 놓친 대가는 결국 국가 전체의 탄소중립 비용 증가로 돌아온다.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1만 배 강력한 온실효과를 내는 수소불화탄소(HFCs)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5%를 차지하게 된 현실은 심각하다. /사진=환경일보DB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1만 배 강력한 온실효과를 내는 수소불화탄소(HFCs)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5%를 차지하게 된 현실은 심각하다. /사진=환경일보DB

국제사회는 이미 슈퍼온실가스 감축을 ‘기후 리더십’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불소계 냉매의 단계적 감축을 법제화했고, 일본은 중소기업 설비 교체를 국가가 보조한다. 우리만이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말로 행정을 미루고 있다. 기금의 존재 이유는 적립이 아니라 집행이다. 정해진 목적에 맞게 투입되지 않는 기금은 단순한 숫자일 뿐, 아무런 기후 효과를 내지 못한다.

산업부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예산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 대응은 부처 간 눈치보기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생존전략이다. 특히 냉매 전환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은 기술보다 자금이 문제다. 정부가 이를 지원하지 않으면 국내 산업은 국제 규제에 밀려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기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자산이다. 그 목적이 분명히 규정돼 있다면, 사용을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와 다를 바 없다. 새 정부는 기후행정의 골든타임을 더는 흘려보내선 안 된다. 적립된 재원을 조속히 활용해 슈퍼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확대하고, 기업의 전환을 지원하는 실질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 기후 대응의 지연은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 포기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