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방지와 주민참여형 풍력발전의 융합이 만드는 지속가능한 미래
박상홍 부경대학교 전자정보통신공학부 교수

박상홍 부경대학교 교수

[환경일보]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다. 봄이면 미세먼지와 가뭄이, 여름이면 폭염과 집중호우가, 가을이면 건조한 바람과 함께 대형 산불이 한반도를 위협한다.

기후위기와 산불의 시대, 에너지의 새로운 역할을 묻다

특히 강원도는 산림이 전체 면적의 80%를 넘는 지역으로, 해마다 되풀이되는 산불 피해로 수천 헥타르의 숲이 잿더미가 되고 있다. 이제 산불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기후변화가 만든 구조적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는 숲을 지키면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까? 최근 강원과 전국 여러 지역에서 추진되는 인공지능(AI) 산불방지 시스템과 풍력발전의 융합형 사업은 이 물음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하고 있다.

바람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산불을 감시하고 그 에너지를 다시 지역 주민의 삶으로 환원하는 구조, 이것이 ‘기후와 사람이 함께 사는 발전’의 새로운 모델이다.

바람으로 숲을 지키는 기술: AI 산불방지 시스템의 도입

기존의 산불방지 체계는 대부분 사람이 순찰하거나 CCTV를 통해 수동으로 감시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산불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진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보다 정밀하고 즉각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국내 일부 풍력단지에서는 AI 기반 산불감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인공지능이 영상과 열 감지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작은 연기나 온도 변화까지 감지하고, 즉시 소방본부에 알린다. 또한 풍력단지의 관리도로는 산불진화 임도로 병행 설계돼 산불 발생 시 진화 차량이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처럼 재생에너지 설비가 곧 산불방지 인프라로 기능하는 사례는 기후위기 대응과 재난 예방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융합 모델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인 나바라 지역은 풍력단지 주변에 AI 감시 카메라와 드론을 연계한 산불예방 시스템을 도입해 발화 후 3분 내 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역시 풍력발전소의 관제망을 활용해 산불 발생 시 열 감지와 통신 네트워크를 통합 운영하고 있다.

사람과 함께하는 에너지: 주민 참여형 발전 모델

우리나라의 많은 발전사업은 ‘주민 반대’라는 벽에 부딪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업의 수익이 외부로만 흘러가고, 주민은 피해자이자 방관자로 남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국내에서는 주민참여형 에너지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사업에 투자하거나 주주로 참여해 발전 수익의 일부를 마을 공동기금, 장학금, 복지사업으로 환원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제주 한림읍의 주민참여형 풍력단지는 전체 지분의 20%를 지역주민이 보유하며 수익 일부를 청소년 장학사업에 지원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이미 이러한 시도는 보편화됐다. 덴마크의 미들그룬덴(Middelgrunden) 풍력단지는 코펜하겐 시민 8500명이 공동 투자해 운영 중이며, 생산된 전력의 수익은 다시 지역사회로 되돌아간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보르나흐(Bornach) 마을 역시 주민들이 공동 출자해 자가소비형 풍력단지를 조성, 에너지 자립률을 70% 이상으로 높였다.

이러한 주민참여형 모델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복원’의 과정이다.

덴마크의 미들그룬덴(Middelgrunden) 풍력단지는 코펜하겐 시민 8500명이 공동 투자해 운영 중이며, 생산된 전력의 수익은 다시 지역사회로 되돌아간다. /사진=환경일보DB
덴마크의 미들그룬덴(Middelgrunden) 풍력단지는 코펜하겐 시민 8500명이 공동 투자해 운영 중이며, 생산된 전력의 수익은 다시 지역사회로 되돌아간다. /사진=환경일보DB

자연과 공존하는 기술, 복원 가능한 설계의 원칙

풍력발전이 환경을 해친다는 오해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의 설계 기술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발전’을 넘어 ‘자연을 복원하는 발전’으로 진화하고 있다.

풍력단지 부지는 주로 기존 임도나 인공 식생지가 조성된 지역을 활용하며, 절토면적을 최소화하고 저소음 터빈을 사용해 동물 서식지의 교란을 줄인다. 사업 종료 후에는 훼손된 지역을 1등급 생태지역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포함시켜 순환형 생태관리를 실천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이런 기술은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에너지 숲 프로젝트’를 통해 풍력단지와 산림복원사업을 병행하며, 매년 산림 탄소 흡수량을 에너지 생산량과 연동해 관리한다. 일본 나가노현에서는 풍력발전기 주변을 ‘생태 완충지대’로 지정해 멸종위기종의 서식 회복과 발전시설의 공존을 동시에 이뤄 내고 있다.

이처럼 풍력은 이제 단순한 발전이 아니라, 기후 회복력(resilience)을 강화하는 생태기반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기후와 사람, 기술이 함께 가는 길

기후위기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현실로 다가왔다. 불과 바람, 비와 눈이 모두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지금, 우리는 기술과 사람, 그리고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산불을 막고, 전기를 만들고, 그 수익을 다시 사람과 숲에 돌려주는 시스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존의 에너지’이다. 덴마크의 시민이, 독일의 마을이, 그리고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이 이 길을 선택하고 있다. 그 바람은 단지 터빈을 돌리는 힘이 아니라, 미래를 바꾸는 의지이자 희망이다.

기후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시대, 이제는 ‘환경을 위한 발전’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환경보전’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길의 출발점에 ‘바람’이 있다. 바람은 오늘도 묵묵히 숲을 지나, 우리의 삶을 지키는 에너지로 불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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