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통·정부·시민이 함께 만드는 순환 시스템 갖춰야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김경훈

[환경일보] 지난 9월, 세계 최대 기후 행사인 ‘뉴욕기후주간’의 핵심 의제는 단연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우리 정부도 다회용기 사업 예산을 57.1% 증액하며 재사용 문화 확산에 나섰다. 하지만 국내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먼저 성공 모델을 만든 해외 사례에서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글로벌 재사용 플랫폼 루프(Loop)는 미국, 일본 등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유독 프랑스에서 전국적인 성공을 거두며 순환경제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루프는 소비자가 사용한 다회용기를 세척할 필요 없이 반납하면, 이를 수거·세척해 다시 생산자에게 돌려주는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프랑스는 어떻게 이것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열쇠, 까르푸와의 만남

그 중심에는 프랑스 최대 유통업체 까르푸(Carrefour)가 있었다. 까르푸는 세계 최초로 매장 내에 루프 시스템을 전면 도입했다. 현재 프랑스 전역 340개 매장으로 루프를 확장해 50가지가 넘는 자체 브랜드(PB) 상품과 370여 종의 유명 브랜드 제품을 다회용기로 제공한다. 소비자는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샴푸부터 와인까지 다회용기에 담아 구매하고, 사용 후에는 세척할 필요 없이 가까운 매장에 반납하면 그만이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모노프리(Monoprix) 등 다른 주요 유통사까지 플랫폼에 합류하면서, 프랑스는 명실상부한 ‘다회용기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테라사이클의 CEO 톰 자키(Tom Szaky)는 “프랑스는 재사용이 단순한 시범 운영이 아닌, 완전한 상업적 규모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이는 소비자 수요뿐만 아니라 적절한 규제, 자금 지원, 그리고 모두에게 편리한 공급망의 완벽한 조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톰 자키 CEO가 분석한 성공 요인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바로 유통사의 주도적인 역할과 정부의 강력한 제도적 뒷받침이다.

우선 까르푸는 단순히 판매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매장 내 가장 좋은 자리를 루프에 내주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며 파트너십을 이끌었다. 여기에 프랑스 정부는 ‘순환경제를 위한 폐기물 방지법(AGEC)’을 통해 2027년까지 재사용 포장재 도입을 의무화하며, 기업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강력한 규제 뒤에는 시스템 전환을 돕는 실질적인 지원과 사용자 편의에 대한 깊은 고민도 따랐다. 프랑스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는 기업이 재사용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초기 비용 부담을 덜어줬다. 덕분에 소비자는 별도의 절차 없이 제품을 구매하고 어디서든 반납하는 압도적인 편의성을 누리게 됐다. 이 단순함이야말로 소비자가 일회용품의 유혹을 뿌리치고 재사용을 선택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프랑스의 성공적인 다회용기 정착 사례는 한국의 다회용기 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진=환경일보DB
프랑스의 성공적인 다회용기 정착 사례는 한국의 다회용기 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진=환경일보DB

시장에 던지는 시사점

프랑스의 사례는 한국의 다회용기 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소비자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대형 유통사 및 배달 플랫폼의 과감한 참여, 정부의 실효성 있는 규제와 인센티브 설계, 소비자가 불편을 느끼지 못할 압도적인 편의성 제공 등 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질 때, 비로소 대한민국에서도 ‘다회용기’가 특별한 선택이 아닌 당연한 일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김경훈 rlarudgns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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