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 미생물과 유전자 기술로 식물 면역 강화,
기후변화 대응의 새로운 해법으로 활용해야
[환경일보] 우리는 ‘면역’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이나 동물의 건강을 떠올린다. 하지만 식물 역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교한 면역 체계를 갖고 있다. 이를 식물 면역(plant immunity)이라 부른며, 병원균과 곰팡이, 해충과 싸우며 스스로를 지키는 면역 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
움직일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는 식물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싸우며 생존한다. 병원균이 침입하면 세포벽을 강화하고, 독성 화합물인 파이토알렉신을 분비하며, 면역 호르몬인 살리실산(SA)과 자스몬산(JA)을 통해 전신 방어 신호를 보내는 등 다양한 전략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이처럼 식물의 면역은 단순한 생리적 반응이라는 측면을 넘어서, 지구 생태계와 인간 사회에도 큰 의미가 있다.
기후위기로 약해지는 식물의 방패
그러나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로부터 식물의 면역 체계가 위협받고 있다. 가장 먼저, 온도가 상승하면 병원균의 번식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상기온, 폭염에 의해 식물의 면역 유전자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고온에서는 식물의 주요 방어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는 것이 원인이다. 가뭄과 홍수 등 환경적 스트레스 또한 식물의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병충해 발생을 증가시키며, 앞서 다룬 기후변화는 ‘외부 스트레스 요인’으로서 식물의 에너지가 ‘생존 유지’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결과적으로 식물은 면역 반응에 쓸 에너지를 생존 유지에 사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면역이 약해진 작물은 농약 사용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토양과 수질 오염 등 환경 문제를 악화시킨다. 결국 식물 면역의 약화는 기후위기와 직결된 생태계 악순환의 핵심 요인이 된다.
보이지 않는 방패를 위한 면역 연구, 환경 문제의 해결
결과적으로 식물들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방패로 작용할 수 없는 식물들을 지키기 위해 연구자들은 식물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는 이름으로 식물 뿌리의 주변 미생물 생태계가 식물 방어를 강화한다는 사실을 정의하고, 식물의 면역 체계가 토양 속 미생물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식물 뿌리 주변에는 리조스피어 미생물군이라 불리는 미생물 생태계가 존재한다. 이 미생물들은 병원균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식물의 면역 반응을 자극하는 신호를 보낸다. 특히 유익한 세균(plant growth-promoting rhizobacteria, PGPR)은 병원균보다 먼저 식물 표면에 자리 잡아 감염을 막는다. 이러한 천연 방어선 덕분에 농약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토양 생태계의 복원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유전자 가위(CRISPR-Cas9) 기술을 활용한 면역 강화 연구 또한 활발하다. 예를 들어 토마토, 벼, 밀 등 주요 작물의 병 저항 유전자를 편집해 고온에서도 유지되는 면역 경로를 설계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변화에 강한 식물을 길러내어 지속 가능한 농업 체계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식물 면역 연구는 식량 안보와 환경 보전의 교차점에 서 있다. 식물의 건강 회복이라는 관점으로 기후위기 문제를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식물 면역은 단순히 과학적 흥미의 대상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구 생태계의 회복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생태학적으로 면역이 강한 식물은 병해충으로부터 오래 살아남으며 그만큼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해 숲의 생태적 기능을 유지해 왔다. 다시 말해, 식물의 면역은 탄소중립 정책의 기반을 마련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탄소를 저장하는 탄소 흡수원으로서 식물의 역할로부터 식물의 건강한 면역 체계는 범지구적으로 필수적이다.

‘식물 면역’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인간 중심의 시각만으로 환경을 바라볼 수 없다. 인간 중심의 관점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식물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존재임을 인지하고 활용해야 한다. 식물의 면역 체계를 이해하는 일은 곧 지구의 건강을 이해하는 일이 된다. 식물 면역 연구는 병충해 저항성 품종 개발을 넘어, 농약 사용을 줄이고, 토양과 수질 오염을 완화하며, 더 넓게는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 복원에 기여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식물 면역을 연구하고 지켜보는 일은 단순히 식물학의 영역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인류와 환경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준다. 따라서 우리가 식물의 싸움을 이해하고 도울수록, 이것은 곧 지구의 면역력을 회복시키는 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식물은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며, 언제나 조용히 지구를 지킨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로 명확하다. 그들의 방패를 알아보고, 그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다.
이제는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서 식물도 생존을 위해 싸우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들의 면역을 연구하고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인류와 환경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어지길 바란다.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조재경 guyparm1472@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