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O 주관 ‘GIAHS 국제 심포지엄’ 개최
한·중·일 대표, 농업유산 유지 위한 지식·대응·협력 강조

[아미드호텔=환경일보] 박준영 기자 =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아미드호텔에서 열린 ‘GIAHS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중·일 3국은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협력 의지를 확인했다. FAO(유엔식량농업기구,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한국협력연락사무소 주관으로 개최된 이번 심포지엄은 ‘GIAHS의 해(Year of GIAHS)’를 맞아 아시아 농업유산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기후변화·생물다양성 감소 등 공동 과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FAO 아시아 담당 부총장 알루에 도홍(Alue Dohong)은 환영사에서 “GIAHS는 생물다양성과 전통지식이 어우러진 살아있는 유산이며, 농촌 공동체의 지혜와 문화가 깃든 가치 있는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은 청산도 구들장논과 제주 밭담 농업시스템 등 9개의 GIAHS 등재지를 통해 세계에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며 “중국과 일본, 태국 등 이웃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기후변화, 농촌 공동체 소멸 등 도전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기조강연에서는 FAO GIAHS 사무국의 오렐리 페르난데스(Aurélie Fernandez)가 연사로 나섰다. 그는 “GIAHS 프로그램의 핵심은 단순한 유산 등재가 아니라 지식 공유와 상호 강화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부터 이 프로그램은 커뮤니티 간의 교류, 정책 환경 조성, 제도 구축, 법제화, 농민 간 학습 교류 등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추구해왔다”며 “단기적 프로젝트를 넘어서 장기적이고 살아 있는 네트워크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특히 트위닝 프로그램(twinning programs)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지식 공유, 공동 홍보, 공동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 이 협력모델은 포괄적이고 지속가능한 파트너십을 위한 효과적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하동군과 일본 미요시정 간의 협약 사례가 그 대표적 예로 소개됐다.
‘보전이 곧 삶’··· 지역공동체가 지키는 농업유산의 길
세션 1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이 각국의 GIAHS 파트너십 구축 사례를 발표했다. 중국 농업농촌부 루 하닝 부처장은 “중국은 2005년 최초 등재 이후 현재까지 25개의 GIAHS를 확보했으며, 188개의 국가중요농업유산(NIAS)을 통해 광범위한 보존 체계를 갖췄다”고 설명했다.
또한, 루 부처장은 중국이 이미 체계적인 3단계 심사체계, 디지털 모니터링 시스템, 과학위원회 운영 등을 통해 지속적인 보존·관리 기반을 마련했으며, ‘공동연구, 청년 교류, 교육 프로그램, 실천 공동체 구축’을 3국 협력 방안으로 제안했다고 밝혔다.

일본 미요시정(사이타마현) 미우라 야스하루 관광산업과 과장은 360년 역사의 ‘낙엽퇴비 순환 농업시스템’을 소개했다. 미우라 과장은 “도시 인근이라는 이점을 살려 관광·체험 프로그램과 국제 교류를 확대해 지역사회의 농업유산에 대한 자긍심과 이해를 높이고 있다”며 “한국 하동군과의 우호도시 협약을 통해 농업유산을 중심으로 한 교류와 교육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대표로는 완도군 이정국 과장이 발표자로 나서 청산도 구들장논의 역사와 보존 노력을 소개했다. 이 과장은 “자연 조건이 열악한 섬 지역에서도 선조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농업 유산을 일궈낸 사례”라며 “보존구역 지정, 주민협의체 운영, 국제 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존과 활용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진행된 윤원근 협성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패널토론에서는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감소, 농촌 공동체의 쇠퇴’라는 3국 공통의 과제가 집중 논의됐다. 특히 중국 농업농촌부 루하닝 부처장은 ‘동주공제(同舟共濟,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라는 표현을 인용하며 “파트너십이란 공동의 배를 타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일”이라며 “GIAHS는 동아시아 농업문명의 공통 자산으로서 협력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은 정형화된 패널 방식이 아닌, 플로어와의 열린 대화 형식으로 구성돼 발표자와 참가자 간 쌍방향 소통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참가자들은 GIAHS 파트너십의 개념 정의와 지속가능한 실천 방안에 대해 실질적인 질문을 던졌고, 각국 발표자들은 제도적 경험과 현장 사례를 공유하며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GIAHS, 주민 손에서 살아나다··· 현장이 보여준 동적 보전
세션2에서는 한국의 각 GIAHS 등재 지역에서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공동체 기반 보전 사례를 바탕으로 동적 보전(dynamic conservation)과 지속가능한 공동체 참여 방식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다.
좌장을 맡은 유학렬 충남연구원 박사는 “공동체가 유산의 주체가 돼야 지속가능한 보전이 가능하다”며 “제도적 보호를 넘어 지역민 중심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참가자들은 각 지역이 겪고 있는 고령화, 이주, 공동체 해체 등의 위기 속에서도 어떻게 주민이 주도적으로 유산을 지켜내고 있는지를 공유했다.
정인영 하동군 농업기술센터 팀장은 “마을 차원의 해설사 양성, 주민 스스로가 만드는 전통문화 콘텐츠 등은 외부 주도형이 아닌 내부 자생력 기반의 보전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손영숙 남해군 해양항만과 팀장 역시 “행정 중심의 일방적 정책보다, 주민과 함께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 중심형 보전’이 효과적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남해에서는 주민 의견 수렴을 통해 축제를 재구성하고, 전통 농법 복원을 주민이 직접 주도하고 있다는 사례가 소개됐다.

최영진 울진군 산림과 팀장은 청년 세대의 참여 확대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 팀장은 “현재 GIAHS 보전활동은 60대 이상 고령층이 중심이지만,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과 인센티브 설계를 통해 다음 세대로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어촌유산학교’나 청년어민 멘토링 프로그램과 같은 실험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음도 함께 공유됐다.
토론 참가자들은 공통적으로 ‘보전은 곧 삶이며, 공동체가 사라지면 유산도 의미를 잃는다’는 인식 아래, 형식적 보전보다 지역민의 생활 속 실천이 핵심임을 강조했다. 유 박사는 마무리 발언에서 “동적 보전은 제도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이며, 주민의 삶이 지속될 때 유산도 함께 살아남는다”고 정리했다.
정책과 현장의 목소리, ‘농업유산’ 협력의 현실을 말하다
세션3 종합토론은 명소아이엠씨 황길식 대표가 좌장을 맡아 진행됐다. 이 자리는 실무 부처와 현장 단체, 전문가가 참여해 각자의 입장에서 본 GIAHS의 과제와 협력 방향을 진솔하게 나누는 장으로 마련됐다.
이지숙 농림축산식품부 사무관은 “현재 국내 9개 GIAHS 지자체의 사업 현황은 매우 다양하며, 지역 특성에 맞는 유연한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는 지속가능한 보전과 활용을 지원하기 위해 정책적 연계와 재정적 기반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며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실효적 지원 의지를 밝혔다.
민경중 해양수산부 사무관은 “어촌형 농업유산은 보전과 함께 산업화 가능성도 내포돼 있다”며 “지역 어촌계와의 유기적 협력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해수부는 최근 울진군 사례를 중심으로 유산의 관광자원화, 교육 콘텐츠 개발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실천을 대표하는 강미희 생태관광협회 부회장은 “농업유산은 지자체 담당 부서만의 일이 아니라, 교육·관광·문화 분야까지 연결되는 다차원적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행정 간 협업과 민간 주체의 참여 구조가 보장돼야 지속가능한 운영이 가능하다”며, 유산의 ‘일상화’와 ‘생활화’를 강조했다.
청산도 구들장논 보존협의회 김미경 사무국장은 “주민이 주도하지 않으면 농업유산은 껍데기만 남는다”며, “행정은 지원자 역할에 머무르고, 실질적인 운영은 주민 손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산도에서의 주민 협의체 활동과 자발적 프로그램 운영 사례를 공유하며, 유산 관리의 주체성 회복 필요성을 제기했다.
태국 치앙마이대학교 파이랏 피분룽시(Pairach Piboonrungsee) 교수는 동남아시아 사례를 소개하며 “유산 보전은 단지 과거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사회의 전통지식이 경제적 자립 기반과 연결될 때 비로소 유산은 살아남는다”며, 국제적 협력과 학술 교류의 확대를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황길식 대표는 “GIAHS는 더 이상 전문가나 행정가만의 담론이 아닌, 지역 주민과 민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생활의 유산”이라며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거버넌스를 제도화하고, 각 주체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GIAHS를 살아 숨 쉬게 만든다”며, 현장 기반의 실천과 참여가 제도적 틀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