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참여, 지역 순환 구조가 농촌 회생 좌우
[환경일보] 농촌의 쇠퇴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소득 정체, 기후위기 장기화가 겹친 구조적 변화다. 단기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농업·지역·에너지 전환을 함께 고려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영농형 태양광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업 생산을 유지하면서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재생에너지 공급원 역할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만으로 지속가능한 체계를 만들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조건과 한계를 명확히 짚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영농형 태양광의 목적과 운영 구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농을 유지하는 형태의 사업임에도 실제 의사 결정은 지주와 사업자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임차농은 농지 접근성 축소나 소득 감소 위험을 떠안지만 사업 이익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돼 왔다. 영농형 태양광을 농업 기반 강화 수단으로 보려면 경작자의 권리와 책임이 제도 설계의 중심이 돼야 한다.
주민 수용성 확보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던 점도 갈등을 키웠다. 설치 이유, 영향, 보상 방식이 명확히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이 추진되면 지역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전남 월평마을처럼 초기 단계부터 주민·지자체·전문가가 함께 논의해 사업 비전과 위험요인을 조정한 사례는 갈등을 줄일 수 있는 근거를 보여준다. 이는 영농형 태양광의 성패가 기술보다 지역과의 관계 설정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적 기준 마련도 중요한 과제다. 작물 생육 조건, 병해충 관리, 재해 안전 설계 등 농업 현장의 검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기 운영은 어렵다. 작물 적합성 판단 없이 시설을 설치하면 농가 소득 안정이라는 기본 목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행정 편의 중심의 획일적 기준이 아니라 지역별 농업 특성을 반영한 표준이 요구된다.
지역 경제와 연계한 운영 구조 또한 중요하다.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의 주민참여형 태양광 마을처럼 에너지 생산과 수익 구조가 마을 내부에서 순환하면 외부 자본 중심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구양리는 주민이 주체로 참여해 수익을 공유한 점에서 지역 기반 재생에너지 운영의 실증 사례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주민 참여 구조는 향후 마을 단위 전력이 지역 기업과 직접 계약(PPA)으로 연결되는 모델로 확장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장기 상환 금융 모델이나 지역 공공기관의 운영 참여를 결합하면 농가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영농형 태양광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농촌 회생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겨냥하는 사업이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면 지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농업 기반을 유지하고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며 기술·경제적 안정성이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농촌의 미래 전략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교한 설계다. 영농형 태양광이 농촌의 지속가능한 기반을 마련하는 수단이 되려면 이러한 원칙이 흔들림 없이 구현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