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 사건은 한 지하철 노동자의 산재사건으로 종료되고 말았지만 지하철환경이 얼마나 유해한가를 말해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하철이란 곳은 지하철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1000만 시민이 이용하는 공간에 이와 같은 치명적인 유해물질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분명 사회적으로 큰 환경문제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유해환경이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사실 지하철 내부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지하철이 얼마나 유해한 공간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서울메트로만 봐도 아직도 40여 개 역에 석면이 있는가 하면 터널 곳곳에서 지하수가 새어나와 라돈가스가 방출되고 있고, 역사 리모델링 공사와 터널 내부에서의 각종 공사로 인해 미세먼지와 온갖 유해물질들이 매일 생산돼 지하철에 잔류한다.
이렇게 잔류된 유해물질들은 열차바람을 타고 터널을 통해 각 역으로 순식간에 확산된다. 각 역으로 확산된 유해물질들은 부족한 환기량 때문에 지하공간에서 맴돌 뿐 쉽게 밖으로 배출되지 않는다. 이런 유해물질들이 있는 공간에서 지하철노동자들은 24시간 근무 상태를 유지하며 숙식을 취한다.
또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매일 출퇴근하면서 1시간 이상씩 주기적으로 지하철 유해환경에 접하게 된다. 지하철 이용 시민이 하루에 1시간씩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한 달(25일)에 25시간, 1년(25일×12월)이면 7500시간이나 지하철에 머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주기적으로 유해환경에 노출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건강에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웰빙문화와 거리가 멀고 의료혜택을 덜 받는 서민층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유해환경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어린 학생과 이용객의 10%가 넘는 노약자가 애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첫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관련 지하철회사의 무관심이다. 지하철을 지상교통 공해와 정체를 막는 친환경적인 도시교통수단으로만 여기던 지하철 건설 초기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어서 ‘콩나물 지하철’이 될수록 지상교통이 원활해져서 좋고, 재정수입도 늘어서 좋다는 식의 경제논리에 너무 매몰돼 있다는 점이다.
둘째, 환기시설의 불량과 노후화, 그리고 관리 소홀에 있다. 지하철에 공기를 공급하는 급기용 환기구는 지하철이 대개 교차로 교통 요지에 위치하는 관계로 버스승강장 근처나 신호대기 중인 차량이 많은 중앙분리대에 나지막하게 자리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차량 매연이 지하철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고, 이렇게 들어오는 유해물질들을 세밀하게 여과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아 지하철 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지하철 안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배기용 환기설비 중 일부는 소음 등의 민원문제로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환경의식 부족이다. 지하철역 냉방화 및 리모델링공사 때는 석면해체작업을 하게 된다. 석면해체작업은 미세 석면분진이 비산돼 지하역사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큰 위험한 작업이기 때문에 철저를 기해야 하지만 환경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업체에서 철거를 맡다 보니 설계시방과 노동부의 허가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석면해체작업이 있는 경우에는 지하철이 안심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한다.
만약에 허술한 석면해체작업으로 인해 기준치가 넘는 석면분진이 지하철에서 검출된다면 이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 이유는 석면은 미세한 한 점이 폐암을 유발할 수 있는 1급 발암성 물질인데 이 석면분진이 지하철내부 공기 중에 들어있다는 것은 바로 수많은 불특정 다수인에게 피폭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지하철을 이용했던 많은 시민들의 의복에 붙어 2차로 각 가정이나 다른 장소에 석면분진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하철역 냉방화공사 및 리모델링공사에서 석면 피해의 위험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나 자치단체에서는 석면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지 않은 채 방관하고 있다. 이제 지하철 환경은 바뀌어야 한다. 석면문제뿐만 아니라 지하철에서 검출되는 유해물질 전부에 대해 정부와 해당 지자체가 발 벗고 나서서 실태조사를 벌이고 그 개선대책을 하루빨리 내놓아 시민이 안심하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