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다이어트, 식품업계에 불어닥친 친환경 바람 끊이지 않길
[환경일보] 편의점을 둘러보면 익숙한 과자 봉지들이 반짝이며 우리를 유혹한다. 과자 봉지에는 저마다 특색있는 과자의 이름부터 과자의 사진, 제조 기업, 영양성분 등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그러나 올해 4월 22일, 한 제과업체에서는 포장지에 그려진 과자의 사진을 아예 빼버린, 충격적이고 어딘가 허전한 모습의 과자 제품을 한정 판매했다. 이는 지구의 날을 맞아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잉크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겉보기에는 별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은 잉크는,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있었을까?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들의 포장재 대부분은 ‘유성 그라비어’라는 유기물 잉크 인쇄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유성 그라비어 방식에는 ‘메틸에틸케톤’, ‘아틸아세테이트’, ‘톨루엔’ 등의 유해 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어 대기 오염의 주범이 된다. 또한, 포장재의 원료가 되는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의 플라스틱은 완전 청결 상태일 때 재활용 효율이 최대가 된다. 즉, 잉크로 이미지나 글자가 인쇄된 상태라면 재활용 효율이 감소하며, 재활용 과정에서 온실가스도 많이 배출된다. 진열대에 앉아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던 알록달록 과자 봉지들이, 알고 보니 탄소배출 및 재활용 효율 감소의 원인이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하나둘 ‘잉크 다이어트’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잉크 다이어트란, 단순히 포장 디자인을 없애거나 간소화해 잉크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친환경 포장재 및 친환경 잉크를 사용함으로써 환경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의 이질감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해진 무라벨 생수도 잉크 다이어트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잉크 다이어트의 결과물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과자들을 먹을 때 유심히 살펴보면, 과거의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포기하고 포장지의 원료인 알루미늄의 색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디자인을 택한 과자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디자인을 간소화함으로써 잉크의 사용량을 줄이고 플라스틱 포장지의 재활용 효율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이외에도 기존에 빨간 잉크로 인쇄됐던 라면 묶음 봉지를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한 비닐로 교체하거나, 떠먹는 아이스크림의 용기를 플라스틱 함량이 줄어든 재료로 교체하는 등 식품업계에 친환경의 바람은 지금도 쌩쌩한 듯하다.

공장 내에서는 인쇄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환경 측면에서 많은 문제가 있는 그라비어 방식의 단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 바로 ‘플렉소’ 방식이다. 플렉소 방식을 사용하면 기존의 방식에 비해 잉크 사용량을 대폭 감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보관하거나 버려지는 잉크의 양이 거의 없다. 사용되는 잉크도 유성 잉크가 아닌 친환경 물질로 만들어진 수성 잉크이며, 물로도 세척이 가능해 해로운 세척용 유기용제를 사용할 필요성도 줄어든다.
기존의 잉크 용제로 사용되던 석유 화합물을 대체하기 위한 친환경 식물성 잉크도 개발되고 있다. 특히 콩기름 잉크는 대기 오염의 원인이 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제거한 친환경 잉크로, 1970년대부터 꾸준히 사용됐다. 또한 폐기 시에 생분해성이 높고 인쇄 작업성과 품질이 뛰어나다는 점 역시 긍정적이다. 이러한 장점에 힘입어 신문 및 일간지 등 인쇄물 업체에서 주로 사용됐던 콩기름 잉크는, 최근 들어 많은 기업에 포장재 제조에 사용하는 물질이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콩기름 잉크를 100% 친환경 잉크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잉크를 이루는 주요한 구성요소는 색소 20%, 첨가제 5~10%. 운반체 75%이다. 수성 잉크와 콩기름 잉크는 친환경 운반체를 가지고 있지만 탄소로 만들어진 색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여전히 20%가량의 오염물질을 포함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잉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해조류 잉크가 연구됐다. 해조류 잉크는 해조류의 세포로 색소를 만든, 100% 친환경 잉크라 할 수 있다. 비료 및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제작 과정도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으며, 사용 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까지 줄이고 100% 자연분해까지 가능하다. 비싼 가격, 대량생산 불가, 색상의 제한성 등의 문제로 아직 상용화되지는 못했지만, 진정한 친환경 포장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심과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 지금의 우리에게는 위험한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수많은 식품업체는 제품의 맛 이전에 포장과 디자인으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들이며 이익을 극대화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의 눈길보다도 더 신경 써야 할 대상이 생겼다. 바로 우리의 삶의 터전, 지구이다.
화려한 포장지에 우리의 눈이 반짝일 때, 지구의 눈빛은 점점 흐려져 가고 있다. 포장지와 잉크, 그리고 인쇄 방식에 걸쳐 식품업계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나,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과자봉지에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다채롭고 화려한 잉크를 맛보게 해 줄 수 없다. 가볍고 단순한 포장재를 만들기 위한 ‘잉크 다이어트’가 절실한 때라는 것이다.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박재욱 pppwoo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