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성·강제성 부족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더불어 노정관계 회복 필요
[환경일보] 올여름(6~8월)은 유독 후덥지근하게 느껴진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이는 실제 수치로 입증이 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이 1994년과 2018년을 제치고 가장 더웠던 여름이었고, 전국 평균기온과 열대야 일수가 역대 1위, 폭염일수는 역대 3위를 기록했다. 기후변화에 따라 여름은 더 길어지고, 더 더워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1세기 후반기(2081년~2100년)에 폭염일이 최대 70여 일이 될 정도로 폭염일수가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점점 더 힘들어질 여름, 더위에 더 많이 노출된 이들이 있다. 건설업과 물류업 등에 종사하는 옥외 노동자들이다. 뜨거운 햇빛과 높은 온도 및 습도는 이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때로는 사망에 이르게 한다. 대표적으로 온열질환의 일종인 열사병이 있다. 열사병은 체온 유지를 담당하는 중추의 기능 상실을 유발해 체온 상승을 일으키는데, 심부 체온이 40℃를 넘으면 중추신경계 이상이나 혼수상태를 일으키는 등 무겁거나 위험한 물체를 운반하고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건설 현장 및 물류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일례로 지난 2022년 7월 카이스트 건물 신축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 발생으로 산업재해가 승인된 건수는 총 147건이었고 이 중 사망사고는 22건에 달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4월 ‘기후변화 속 직장 내 안전 및 건강 대책 방안’ 보고서를 통해 폭염에 노출된 근로자 규모가 크고, 폭염일수 증가 추세에 따라 해당 규모가 더욱 커질 만큼, 이로 인한 건강 피해 및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대책 강화를 요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대응이나 보호가 여러 차원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 논의는 오랜 기간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여름철 옥외 노동자들의 근로환경 안전은 대표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데, 산안법의 관련 법조문은 명확성과 강제성이 부족해 충분한 보호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산안법 제51조와 52조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사업주와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하고 있으며, 산안법의 하위법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규칙’) 제566조는 근로자가 ‘고열·한랭·다습 작업을 하는 경우’나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사업주가 ‘적절하게 휴식하도록 하는 등 근로자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폭염이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기준이 명확지 못하며, 규칙에 따른 ‘적절한 조치’ 역시 ‘그늘이 있는 휴게시설’에서 ‘휴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외의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적절한 조치’의 경우 고용노동부가 배포하는 가이드라인상 권고사항들이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권고’인 만큼 관련 조치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온이 특정 수준 이상일 경우 일정 시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권고사항이나, 냉방장치(에어컨) 설치와 같은 더욱 적극적인 조치는 이행을 강제할 근거가 미비한 상태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설문조사(2024.7.27~28)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노동자)의 80.6%가 한낮에도 별도의 작업 중단 조치가 없었다고 답했으며, 81.5%는 1시간마다 10분 내지 15분씩 규칙적인 휴식 시간이 주어져야 함에도 이를 보장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열 작업’은 작업 장비가 고열을 발생시키는 경우에만 인정되는 만큼 건설 및 물류 노동자들은 아무리 기온이나 체감온도가 높더라도 상기 조문에 따른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 22대 국회에서 여러 산안법 개정안이 심의 중이다. 하지만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21대 국회에서도 유사 개정안들이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에 따라 자동 폐기된 만큼, 관련 논의가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엔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을까?
ILO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12년부터 행정조치를 통해 기온이 40℃ 이상일 경우 옥외노동 전일 중단, 37℃에서 40℃ 사이일 경우 6시간 이상 작업 금지 및 기온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 3시간 이상 작업 금지 등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바레인의 경우 노동부(the Ministry of Labour) 프로토콜에 따라 매해 7월 1일부터 8월 31일 기간 내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는 옥외노동이 금지돼 있고, 이러한 조치는 쿠웨이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해당 보고서는 노동계의 집단협상, 인식 제고 캠페인, 범정부 위원회 설치 등을 통해 관련 조치가 강화된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으며, 결론을 통해 관련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에서의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만큼 이들과의 소통과 협력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폭염·한파 건강장해 예방조치 개선방안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31개국의 폭염 관련 규정을 조사했는데, 24개국이 강제성을 가진 작업장 내 대응 조치 규정을 보유하고 있었고 16개국은 구체적인 온도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국가마다 폭염 수준이 상이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적 환경 역시 다른 만큼 해외사례를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순 없겠지만, 이를 참고해 보다 적극적인 보호책 마련을 논의하고 시도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 보호 차원에서의 논의가 최우선이지만, 최근 ESG의 중요성이 나날이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는 기업의 가치와 경쟁력에 중대한 손실을 입히기 때문에도, 관련 논의는 중요하다. 거의 모든 국내 기업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시 활용하는 기준인 GRI는 조항 403에서 ‘산업안전보건’을, 403-9와 403-10에서 ‘재해율’과 ‘업무 관련 질병’을 다루고 있다. 위반 시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열사병을 직업성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2022년 7월 카이스트에서 발생한 사망사건의 경우 이에 따라 원청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가 돼 있는 상황이다. 즉 당위적, 규범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경영관리 차원에서도 관련 보호책 강화는 중요하다.
ILO는 관련 정책 수립 및 집행에 있어 이해관계자, 즉 노동계와의 협력과 소통을 강조했다. 관련해 우리 정부는 모범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썩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가능할 것 같다. 출범 직후부터 노동계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오던 정부는 최근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에 적대적 인식을 보여온 인사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 때문에 노동계와 정부 간 관계(노정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노동자의 건강과 권익 보호를 위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보호책 강화와 더불어 노정관계 회복도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손동찬 dongchan127@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