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익 파트너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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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일보] 2025년 7월, 한반도는 117년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무더운 날씨를 마주하고 있다. 이 폭염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최근 경기도 고양시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60대 근로자가 지하 주차장에서 카트를 정리하던 중 숨졌고, 포천, 인천, 서울에서는 택배노동자 3명이 사망했다. 여기에 구미 공사장의 23세 이주노동자와 폭염에 스러진 농민들의 비극까지 더해지며 재난의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휴식을 보장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의 현행 규정만으로 이 재난을 막기에 충분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기상청에 따르면 7월 초 열흘간의 전국 평균 폭염 일수는 5.5일로, 이미 지난해 7월 전체 기록인 4.3일을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의 16.8일, 2018년의 16.6일 열대야 기록을 넘어설 기세다. 기후위기는 이제 먼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 기반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재난이며, 폭염은 가장 가시적인 징후다.

위기의 본질: 외면된 ‘자연자본’

우리는 아직까지 폭염을 ‘날씨’로 여기고 있기에 사회적·경제적·법적 시스템의 취약성을 벗어날 방법을 궁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폭염 앞에서 속수무책인 이유는 이 위기의 본질이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의 외면’에 있기 때문이다. 자연자본이란 생태계 서비스, 토양, 물, 공기, 생물다양성 등 인간의 경제활동과 생존에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는 자연 자원의 총합을 의미한다.

문제는 현재 국내 회계 및 법 제도 어디에서도 이 자연자본의 가치를 비용 항목이나 자산 항목으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서울 여의도 면적(약 2.9㎢)의 도시숲이 사라져 폭염 저감, 대기 정화, 생물다양성 유지 기능이 상실되어도 회계장부에는 그 손실이 ‘0’으로 기록될 뿐이다. 폭염은 바로 이러한 시스템의 한계와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도시 설계의 전환: 그린 인프라의 제도화

폭염은 도로의 아스팔트와 조경 없는 광장, 실외기 열기가 내뿜는 ‘열섬’ 현상으로 대표되는 도시 설계의 실패를 보여준다. 이제는 폭염을 피하는 소극적 대응을 넘어, 위기를 관리하고 예방하는 구조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자연자본 기반의 도시계획, 즉 ‘그린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의 제도화를 고려해야 한다. 그린인프라는 보호지역, 오픈스페이스, 산림, 야생서식처, 공원, 습지, 하천 및 물길, 투수시설, 옥상정원, 도시농업공간, 녹지축과 녹도(greenway), 가로수 등 자연, 반자연, 인공의 녹지공간을 통합적으로 연결해 도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개념이다.

경제 시스템의 재정립: 환경비용의 내부화

곧 여름휴가 기간이 된다. 폭염을 피하기 위하여 산, 바다로 이동하면 될 것인가? 지난 5월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5대 분야 12대 정책 과제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제주환경보전분담금 제도’ 도입이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2016년 10월 성남시장 재직 당시 제주를 찾아 특강을 진행한 자리에서 제주도의 환경보전과 난개발 방지를 위한 환경보전기여금 도입을 제안한 바 있고, 제20대 대선 후보이었던 2021년에도 환경보전기여금 제도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환경보전기여금 제도는 금번 대통령 선거에서 언급되지 않았고, 심지어 얼마 전인 7월 1일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자신의 환경분야 대표 공약인 환경보전분담금에 대해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공약이라도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하여 유보하는 입장을 보인바 있다. 이는 여전히 경제적인 측면이 환경에 관한 고려를 압도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지속가능발전 기본법’ 제23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동물·식물의 서식지와 생태적으로 우수한 자연환경자산 및 지역의 특색 있는 문화자산 등을 조화롭게 보존·복원 및 이용하여 이를 관광자원화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지역의 사회적 가치를 존중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관광을 촉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대통령과 도지사가 공약을 하였던 제주도의 환경보전부담금 제도 추진도 쉽지 않은 상태이다. 제주환경보전부담금의 실체는 ‘환경비용의 내부화’이다. ‘자연자본’을 회계상으로 인식하고 ‘환경비용’ 또한 인식하여 이에 관한 비용을 부담할 때, 기후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오버투어리즘 경계, 생태계서비스지불제계약, 기후위기 대응이 단순한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폭염 견디는 사회에서, 폭염 예방하는 사회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 대응을 넘어선 구조적 변화다. 폭염을 견디게 하는 ‘복지’는 당연히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폭염 자체를 줄이는 ‘생태 복원’과 ‘자연자본 회복’이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탄소중립을 넘어 ‘자연회복’이 국가 의제가 되어야 하며, 이에 관한 비용을 산정해야 한다. 그것이 기후위기를 인간 언어가 아닌 ‘자연의 언어’로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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