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익 파트너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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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일보]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나라는 집중호우로 인한 수재(水災) 피해를 겪고 있다. 2025년 7월 집중호우로 인해 서울과 경기, 충청, 경북 등은 기상 관측 이래 최대 수준의 누적 강수량을 기록하였으며, 전국적으로 14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되었다. 기후위기로 인한 집중호우를 막을 수 없지만 매년 반복되는 홍수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9년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통해 4대강 16개의 보가 건설되었고, 2018년 물관리기본법 제정을 통해 물관리를 환경부로 통합하였음에도 물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4대강 재자연화 문제, 취수원 다변화 등 깨끗하고 안전한 물관리를 위한 정책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들 간의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 표류 중이다.

4대강 재자연화, 논쟁의 중심

최근 환경부는 4대강 재자연화를 공론화하고 있다. 이 논쟁의 배경에는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전국 4대강에 놓인 16개 보가 있다. 보 건설 이후 소위 ‘녹조라떼’라 불릴 정도로 4대강 본류의 녹조 피해가 심해지고, 낙동강에서는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독성물질이 농작물에서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보 해체 또는 개방을 통한 자연성 회복을 추진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보 존치를 결정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급변했고, 물 분쟁을 조정해야 할 국가물관리위원회조차 정권 입장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리며 혼란을 키웠다.

이처럼 4대강 본류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소모적으로 반복되는 동안, 정작 실제 홍수 피해가 집중되는 곳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바로 우리 생활과 더 밀접한 지방하천과 소하천이다.

홍수 피해 무게중심은 지방하천과 소하천

2020년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 명목으로 하천 정비사업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했다. 2021년 기준 국가하천 정비율은 95%임에 비해 지방하천은 77.5%에 불과하였고, 소하천의 경우에는 2023년 기준으로도 46.5%에 그쳤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홍수 피해의 93%는 지방하천에서 발생하였고, 소하천의 경우에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약 2500억원의 재산피해를 발생시켰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부실과 예산 부족, 전문성 결여와 맞물려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적극 개입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소하천정비법과 하천법으로 분절된 하천관리 법체계, 하천법 내 국가하천(환경부)과 지방하천(지방자치단체)으로 이원화된 관리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결국 4대강 보는 홍수와 직접적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홍수 피해를 막는 치수(治水)의 핵심이 ‘지방’에 있다면,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이수(利水)의 문제 역시 또 다른 차원의 지역 갈등을 낳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300만 주민의 식수원인 낙동강이다.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의 갈등

본류 길이만 보면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이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부산 을숙도까지 1300리 물길은 대구와 부산 등 대도시를 거치면서 1300만 유역 주민의 주요 식수원이 된다. 낙동강은 1991년 페놀 사고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며, 오늘날까지도 유역 주변의 각종 오염원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경사가 완만하고 유속이 느린 탓에 여름철 녹조가 쉽게 번성하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이에 대구시는 안동댐 등 상류의 물을 직접 취수하기 위한 맑은 물 하이웨이사업을, 부산은 경남 거창, 의령 등의 강변 여과수 취수원을 확보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취수로 인한 용수 감소 우려와 보상 문제로 지역주민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2024년 9월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를 위한 특별법(안)’(윤재옥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되었지만 주민 참여보다 중앙정부 차원의 사업 추진을 용이하게 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단순히 지역 이기주의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물’을 둘러싼 국민의 기본 권리와 이를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물에 대한 권리와 국가의 의무

‘물관리기본법’ 제4조 제1항은 ‘누구든지 사용 목적에 적합한 수질의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이용할 권리, 가뭄·홍수 등의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 건강하고 쾌적한 물환경에서의 삶을 누릴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환경권에 비견되는 기본적 권리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속가능한 물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적 특성에 맞는 물관리 계획을 수립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국가의 의무는 특수한 지역적 사정을 반영하는 해법으로 구체화되지 않으면 추상적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속도보다 방향 :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치수 대책 마련은 시급하다. 그러나 물관리 정책은 속도보다 방향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물관리 정책의 방향타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릴수록, 잘못된 정책을 되돌리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과 국민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권리와 홍수 등 재해로부터 안전한 삶의 보장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이며, 국가는 이를 지킬 의무가 있다. 4대강 재자연화든, 취수원 다변화든, 속도를 조금 늦추더라도 국민 눈높이와 이해에 맞춘 상생과 공감의 해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물관리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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