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기 경희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홍희기 경희대학교 교수
홍희기 경희대학교 교수

[환경일보] 지구 온난화로 인한 폭염은 이제 낯선 현상이 아니다. 올여름 전국 평균기온은 25.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서울의 열대야 일수는 46일로 관측 이래 최다 기록을 세웠으며, 2년 연속 40일을 넘긴 것은 사상 처음이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느낌이 들고 벚나무에 단풍이 조금씩 보이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계절의 변화가 느껴진다. 이에 창문만 열어도 냉방이 되는 외기냉방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다.

에너지 절약과 탄소중립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된 지금, 우리는 건물 에너지 효율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하고 있다. 특히 현대 건축물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단열과 기밀 성능을 자랑하며, 외부 환경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이는 분명 냉난방 효율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동시에 자연적인 냉방과 환기를 어렵게 만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건물들은 단순히 창문을 열어 맞바람이 통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실내 온도를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고단열·고기밀의 현대식 주택이나 사무용 건물은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이 외부로 잘 빠져나가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한낮의 태양열이나 내부의 전자기기,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열로 인해 실내 온도가 상승하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고는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어렵다. 특히 외부 공기가 충분히 시원한 봄이나 가을철에도 실내는 더워져 냉방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잦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외기냉방’이다. 외기냉방은 이름 그대로 외부의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를 실내로 유입시켜 실내 온도를 낮추는 친환경적인 냉방 방식이다. 에어컨이 냉매를 압축·팽창시키는 과정을 통해 전기에너지를 소모하며 열을 배출하는 것과 달리, 외기냉방은 외부 공기의 낮은 온도를 직접 활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외기냉방’이라고 하면 단순히 창문을 여는 것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현대식 건물에서는 창문을 여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고층 건물에서는 창문을 여는 것이 위험하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많으며, 미세먼지나 소음 등의 문제로 인해 창문을 닫고 생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기계적인 장치를 통해 외부 공기를 강제로 유입시키는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의무적으로 설치된 열회수환기장치(ERV)가 있는데, 이 장치의 바이패스 기능을 활용해 외기를 바로 도입하는 것으로는 부족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분하지 않다. 열회수환기장치의 주된 목적은 오염된 실내 공기를 외부로 배출하고 신선한 공기를 유입시키면서 열에너지를 회수해 냉난방 부하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적으로 요구되는 최소 환기량은 시간당 0.5회 정도이다.

그러나 외기냉방은 단순한 공기 정화가 아닌, 냉방을 목적으로 한다. 외기냉방 시스템은 건물 전체의 현열부하를 감당할 수 있도록 ERV보다 훨씬 큰 풍량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외기냉방을 통해 실내 현열부하를 처리하려면 시간당 2.5~5.0회 이상의 환기율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냉방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실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열(현열부하)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풍량이 필요하다. 통상적인 계산에 따르면, 이러한 현열부하를 처리하기 위한 풍량은 열회수환기장치의 최소 환기량인 0.5회에 비해 최소 5배 이상 요구된다. ERV의 바이패스 기능은 이 풍량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환기’ 수준의 외기 도입은 가능하지만 ‘냉방’ 수준의 열 제거는 어렵다.

따라서 건축물을 설계할 때는 단순한 법적 기준을 넘어서 외기냉방 시스템의 도입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추가적인 장치를 설치하는 것을 넘어, 외기냉방을 위한 충분한 용량의 공조기나 덕트 설계를 포함해야 함을 의미한다. 외기냉방은 단순히 에너지 절약을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 건축을 향한 필수적인 선택지이다. 건축가와 설계자들은 외기냉방의 이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환기 설비를 면밀히 검토해 더욱 지속가능한 건물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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