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봉명주공’, 잊혀 가는 것들에 대한 가치의 소중함 기록
“우리의 거주는 자연, 환경, 공동체적 연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발치에 서 있는 듯한 아찔한 세상, ‘기후위기’ 시대. 지구를 보호하고 지키는 건 당연히 우리들의 몫으로, <환경일보>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적인 생활 실천에 공감할 수 있도록, 생활 전반 ‘환경’을 위해 기꺼이 삶의 전환을 이룬 ‘에코 인플루언서(에코in)’를 찾아 인터뷰하는 ‘에코in’을 마련했다.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봉명주공 생태환경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김기성 영화감독을 만났다. /사진=김인성 기자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봉명주공 생태환경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김기성 영화감독을 만났다. /사진=김인성 기자

[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기후위기로 인해 지구는 더 이상 사람들의 안전한 주거지가 아니게 됐다. 지구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변환경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가속되면서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는 소통의 공간은 좁아지고, 부동산 바람으로 빽빽한 고층 건물들이 점차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이러한 흐름 속 청주에 위치한 80년대 아파트 ‘봉명주공’도 결국 사람들의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김기성 감독은 재건축 전 봉명주공에 있던 이웃과 동식물 그리고 아파트 철거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주민들은 강제 이주를 하고, 30년 전에 손수 심은 나무들도 전기톱으로 가차없이 베어진다. 폐허가 된 동네엔 처연함마저 느껴지지만, 감독은 이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리고는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나무와 꽃이 뽑히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주거‘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말이다.

“오랜 세월 주민들을 지키던 나무가 베어지는 순간,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김기성 감독이 취재진에게 건넨 봉명주공에 대한 첫마디였다.

그는 집이라는 공간이란 단지 개인적인 장소가 아닌, 주변 환경과 이웃 그리고 동식물과의 공생하는 삶의 터전임을 촬영하면서 더 깊게 체감했다고 전했다. 또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현대 주거의 의미와 환경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봉명주공은 제18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환경부문 대상을 받는 등 많은 호응을 얻었다. /자료제공=김기성 감독
봉명주공은 최근 영화제 등 관객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어 오는 19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자료제공=김기성 감독

김 감독은 “다른 곳보다 더 특별했던 봉명주공이라는 아파트를 통해,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는 도시의 삶이 아닌 땅과 흙에 뿌리내리는 삶의 의미를 돌아보길 바란다”며 영화 제작 배경을 밝혔다.

이런 확고한 시선 덕분인지 거주지를 생태학적 시선으로 그려낸 봉명주공은 영상미는 물론 작품성으로도 국내‧외의 인정을 받았다. 영화로서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18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환경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밑동이 베어지는 나무와 떠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엮어 주거 환경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한 김기성 감독을 직접 만나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눠봤다.

Q1.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와 ‘봉명주공’ 영화 소개 부탁드립니다.

원래 조각을 전공했다가 2년 전 ‘봉명주공’을 통해 처음으로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게 된 김기성 영화감독이라고 합니다. 봉명주공은 청주에 있는 1세대 봉명주공이란 아파트가 철거되면서, 그 과정 속 변화되는 주민들의 삶과 그곳에 살았던 나무와 식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예요.

봉명주공은 주민들이 마을과도 같은 공동체적 생활상을 이어온 곳입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 식물들이 함께 뿌리내리고 살던 삶의 터전이죠. 그곳의 공동체가 해산되고 삶의 뿌리가 뽑혀 나가는 장면들을 통해 그동안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해온 도시 개발의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땅으로부터 점점 높은 곳으로 향하는 고층아파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흙을 밟아볼 일이 없어지는 도시의 삶에서, 땅과 흙에 뿌리내리는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해 제작하게 됐어요.

봉명주공을 촬영하고 있는 김기성 감독의 모습 /사진제공=김기성 강독
봉명주공을 촬영하고 있는 김기성 감독의 모습 /사진제공=김기성 강독

Q2. 대중들에게 환경영화는 아직 생소한 영역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대중들에게 있어 환경영화라는 게 아직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요즘은 기후변화나 환경문제 의식이 널리 알려져 영화 쪽에서도 환경 분야에 점차 관심을 쏟고 있는 추세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생태적 관점을 담은 영화와 콘텐츠들이 더 다양해지고 많아질 거라 예상하고 있어요.

Q3. 한국에서 조각 전공 후 독일에서 미디어아트를 공부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주거와 환경에 주목하게 된 어떠한 계기가 있었나요.

독일에서 거주 당시 이사를 굉장히 자주 했었어요. 학교나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베를린이나 뮌헨 같은 큰 도시들에서부터 작은 시골마을에서도 살았는데요. 이렇게 이사를 많이 다니다 보니 주변 문화라든지 주거 환경 부분들을 자연스레 신경쓰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공원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독일은 햇빛이 밝은 날이 드물기에 날씨가 좋으면 모두 공원에 모여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주거와 환경의 밀접한 관계를 느꼈죠.

사실 제가 전공했던 조각과 미디어아트도 주거 환경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조석이나 조각과가 아닌, 환경조각과를 나왔는데요. 환경조각은 건물 앞에 세우게끔 돼 있는 조각물을 칭하는 것입니다.

조형물과 조각만을 미시적으로 구상해서 만드는 것이 아닌 거시적인 관점에서 집과 조경 전체를 먼저 고려하고 주변과 조화로운 환경을 만드는 거죠. 어쩌면 봉명주공과의 시작점이 이때부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주거지로서만이 아닌 주거, 환경, 공동체의 조화 필요

고층 아파트는 늘어나는데 소통의 공간은 되려 감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태계의 공생 관계가 사라지고 있어

사라지고 잊혀 가는 소중한 가치 보존하고 지켜야

 

Q4. 특별히 봉명주공을 주제로 촬영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사유가 있다면?

청주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어요. 이미 많은 아파트들이 재건축이 됐고, 그중에는 봉명주공처럼 80년대에 만들어진 1세대 아파트도 다수 포함이 됐죠. 그래서 지역‧사회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과 더불어 다른 아파트와 다른 독특한 분위기와 정서를 가지고 있는 봉명주공에 주목했습니다.

가장 처음에 봉명주공을 접하게 된 것은 프로듀서를 도와준 왕민철 감독의 제의였습니다. 청주동물원을 소재로 한 ‘동물, 원’(2018)이라는 영화 때문에 청주에 자주 가면서 우연히 봉명주공을 발견하고는 저에게 이곳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보라로 제안했죠.

오랫동안 청주에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고, 지인들도 모르는 숨겨진 장소더라고요. 왕 감독 말처럼 첫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독특한 느낌이 들어서 바로 촬영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Q5. 영화의 첫 시작을 장식했던 나무가 마지막 장면에서도 똑같은 구도로 잘려진 채로 쓰러져 있어요.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의도로 이러한 구성을 연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버드나무가 봉명주공의 수호목이자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옛날 시골에는 오래된 나무가 하나씩 있었잖아요. 마을 입구에 있는 버드나무는 특히 크기도 굉장히 컸고 촬영을 하면 할수록 봉명주공을 지키고 상징하는 존재라고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가 잘리는 장면을 촬영했을 때 그 마을을 지키던 수호신이 쓰러지고 동네의 정체성이 사라진 상황 같았어요. 현대 사회로 가면 갈수록 각 마을 공동체마다 지니고 있던 고유의 정체성과 연대감이 사라지고, 계속해서 획일화되고 인위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잖아요.

이미 재건축이 되고 나무도 잘리고 건물도 헐어지고 상징성을 갖고 있는 존재가 쓰러진 것에 대해, 초반의 평화로움과 마지막 모습의 차이를 부각시켜 한층 강조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봉명주공 단지가 철거되면서 베어진 봉명주공 버들나무 /사진제공=김기성 감독
봉명주공 단지가 철거되면서 베어진 봉명주공 버들나무 /사진제공=김기성 감독

Q6. 도시 개발과 주거환경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면?

우리 세계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은, 그곳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라는 것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때때로 사람이 살아온 삶의 기반을 옮기는 과정에 있어 보호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이 무력화 되는 경우를 빈번히 접하게 되죠. 하물며 나무를 옮겨 심을 때 각고의 정성을 기울여도 새 땅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나무도 몸살을 앓는다고 하는데 말이에요.

집이란 각자의 사연과 추억이 축적되며 자신만의 세상을 완성해가는 공간이에요. 주거, 환경, 마을이라는 것에서 단순히 주거지로서만이 아니라 주변의 조화에 대해서도 한 번쯤 주거의 의미를 다시 재고해 봐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고려됩니다. 그런 것들이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겠죠. 어쩌면 쓰레기를 안 버리는 것도 남을 배려하는 실천적인 역할이니까요. 자기 주변의 사람, 생태계나 이웃들과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식이 먼저 선행돼야, 우리의 주거 환경에서부터 개선되는 부분도 늘어나지 않을까요.

Q7. 감독 혹은 개인의 입장에서 지구, 생태 등에서 어떤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전 지구적으로 보면 생태계 파괴나 환경오염을 들 수 있겠죠.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저도 기후변화에 대해서 적잖게 체감을 했었는데요. 10년 가까이 독일에서 거주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독일 같은 경우 미세먼지가 없었거든요. 예전에 한국의 좋았던 대기질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도 환경과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또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난무하면서 나무를 자르거나 땅을 파내거나 하는 부분 등에 있어서 자연의 경외심이나 무서움 또한 없어지는 것 같아요.

옛날 사람들은 자연을 신성시 여겨서 마을의 사소한 나무 하나 벨 때도 굉장히 조심했고, 하물며 위령제를 올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걸 무분별적으로 파괴하고 없애는 행동들에 너무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과거의 것들을 그대로 보전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드는 방식들이 너무 아쉽습니다.

옛날의 건물들이 허물어져 가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태계 간의 공동체 의식들이 사라지고 있는 거죠. 이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웃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생활을 같이하는 소통의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봉명주공 단지에서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뛰어놀던 광경 /사진제공=김기성 감독
과거 봉명주공 단지에서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뛰어놀던 광경 /사진제공=김기성 감독

Q8. 봉명주공 기획 시에는 식물, 자연보다는 건물에 초점이 맞췄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 촬영 후에 변화가 생긴 점이 있다면?

우선 봉명주공 기획 때는 한 주거지의 아파트를 바라본 것이라면, 제작에 들어가면서는 좀 더 확장해서 청주 도시 전체와 광의적인 생태에 대해 바라보게 됐습니다.

청주에서도 환경에 대해서 이슈와 문제가 있어요. 예를 들면, 가로수에 있는 은행나무들이 간판을 가리거나 열매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가지를 자르는데, 나무를 가꾸기 위해서 자르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자라지 않도록 인위적으로 손상시키죠.

이뿐만 아니라, 인구대비 지나치게 과열된 부동산과 건축 양상 이슈도 주의깊게 보고 있습니다. 청주만 봐도 인구수는 점차 줄어가는데 그러한 점들이 고려되기보다는 무분별하게 아파트들이 만들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청주도 오랫동안 지역 내에서 미분양된 곳이 많아서 어려움이 겪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자체가 사회에서 만연해 있는 것 같은데, 집의 의미와 개념이 부동산 관점보다는 나와 세상을 조화롭게 만드는 공간으로 바라본다면, 집 그 자체보다도 주변의 환경과 이웃이나 다른 요소들을 좀 더 많이 생각하게 돼 지금보다도 더 나은 문화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각자 분야에서 문제의식, 비판적 시각으로 고민 필요 

자신을 위해서 주변, 이웃, 환경 소중히 여겨야

영화인으로서 환경에 대한 메시지 꾸준히 전달할 것

 

Q9. 앞으로 주거나 환경과 관련된 작품으로 계속 만들어 갈 예정인가요.

봉명주공을 만들면서 상도 받기도 했지만 실제로 봉명주공을 만들어 가면서 환경이나 자연에 대한 많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저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영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기에 소재 자체는 달라질 수 있어도 사회에서, 주변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찾아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계속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문제의식, 비판적 시각을 각자의 분야에서 계속 고민하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돼요.

Q10.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하고 있는 작품과 활동이 있다면?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잊혀져 가는 소중한 의미들을 찾아서 영화로 꾸준히 작업할 계획이에요.

Q11. 기후위기 시대 지구와 환경을 살리는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집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공간으로 주변 환경과 생태계, 사회적 연대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주변, 사람들, 환경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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