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최전선은 결국 지방정부, 보다 체계적이고 즉각적인 대응 필요
[환경일보] 2024년 11월 9일,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주의 주도 발렌시아시에서는 약 13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당신들(정부)이 우리를 죽였다”, “책임자는 즉각 사임하라”고 외쳤다. 같은 날 수도 마드리드와 알리칸테 등 인근 도시에서도 정부의 자연재해 대응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또한 시위대는 10월 29일 발생한 폭우로 인한 홍수에 부실하게 대처한 것에 대해 분노했다.
스페인에 내린 폭우는 최근 유럽 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자연재해로 꼽힌다. 특히 발렌시아주에는 약 8시간 만에 1년치 비가 쏟아진 피해로부터 당시 파악된 사망자 전체 220명 중 212명이 발렌시아주에서 숨졌다. 시민들의 울분은 엄청났다. 시위가 끝날 무렵 격분한 시위대 일부는 의자와 여러 물건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으며, 발렌시아 시청은 진흙으로 더럽혀졌다. 11월 3일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인 파이포르타를 방문한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페드로 산체스 총리 역시 분노를 피하지 못했다.
자연재해로 피해 본 시민들은 왜 비난의 화살을 당국에 돌렸을까? 재난의 발생은 비가역적일지라도, 그 이후의 단계는 인간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스페인 정부와 발렌시아주 정부는 이번 재난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페인 대홍수는 스페인 말라가, 발렌시아 등 남동부 지역에서 10월 29일부터 사흘간 폭우가 쏟아지면서 발생했다. 스페인 기상청은 발렌시아에 8시간 동안 내린 비가 지난 20개월 강수량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폭우에 하천이 범람하면서 차량은 흙탕물에 떠내려갔고, 주택도 물에 잠겼다. 구조대는 헬리콥터와 고무보트를 동원해 주민들을 구조했다. 그러나 피해는 뼈아팠다. 재산 피해는 물론 인명피해도 엄청났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강이나 하천이 범람하면서 급류에 떠밀린 실종자도 상당해 추가 희생자가 속출했다. 사망자는 220명에 육박했고, 3000가구에 전기가 끊겼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폭우의 주된 원인으로 지중해의 따뜻한 바다로 찬 공기가 내려오는 ‘고타 프리아’를 지적했다. 스페인에서는 가을, 겨울에 발생하는 자연적인 기후 현상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구름이 더 많은 비를 머금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상 변화가 원인이 된 것이다.
문제는 발렌시아주 당국의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점이다. 홍수가 내린 당일 일부 지역은 오후 6시쯤부터 침수가 시작돼 성인 허리 높이까지 빗물이 차올랐지만, 시민들은 오후 8시가 돼서야 재난 문자를 받았다. 기상청이 오전 7시 30분쯤부터 최고 단계인 폭우 ‘적색경보’를 내렸는데도 10시간 넘게 대피령이 발령되지 않은 탓에 주민들의 상황 파악이 지연됐다. 중앙 정부의 구조 인력 파견이 늦어지는 사이 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진흙을 파내며 피해 복구에 나서야 했던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카를로스 마손 발렌시아 주지사의 당일 행적도 시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마손 주지사는 당일 오후 유명 식당에서 기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고, 이날 소집된 비상 회의에는 오후 6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손 주지사는 중앙 정부가 홍수의 위험성을 충분히 경고해 주지 않아 피해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스페인에서 재난 대응 1차 책임은 지방정부에 있으며 홍수 발생 닷새 전부터 기상청이 호우 경보를 내렸음에 불구하고 주 당국은 아무런 경고 조치가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지역 정부가 재난 대응을 담당하고 있지만, 필요할 시 마드리드의 중앙 정부에 추가 자원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스페인 기상청이 발렌시아 지역에 대해 10월 25일부터 폭풍 경고를 발령했음에도 발렌시아 당국은 홍수가 시작된 지 몇 시간 후에야 지역 주민들에게 휴대전화 경고 메시지를 발송했다. 이와 같은 정황이 발렌시아 주 정부에 대한 비난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이번 스페인 대홍수 사태는 재난 관리에서 지방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재난은 지역에서 발생하며, 그 피해는 가장 먼저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재난의 최전선에서 이를 즉각적으로 마주하고 대응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이는 지방정부가 국가 정부와 비교해 지역 사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발렌시아 주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국가 정부에 돌리려는 태도를 보인 것은 책임 회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중앙 정부는 재난 관리의 큰 틀을 제공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방정부가 재난 관리 시 따르는 프로토콜과 매뉴얼은 중앙 정부가 공급하며 교육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기 대응과 실질적인 실행은 지방정부의 몫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초기 대응의 실패는 피해를 급격히 악화시킬 수 있으며, 이는 지방정부의 준비성과 책임감에 달려 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를 직접 관리하고 대응해야 할 주체는 지방정부이며, 이는 법적·윤리적으로도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재난 관리 체계와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번 스페인 대홍수 사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후변화로 재난의 빈도나 규모는 갈수록 상상을 초월한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간 관리·책임의 주체를 명확히 하고, 특히 지역별 지방정부가 중심이 돼 재난 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간의 영역에서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세심한 노력이 절실하다. 끝으로 이번 대홍수 사태로 피해당한 모든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이서진 lsjlee0305@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