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희귀 동식물 등 한반도 생물다양성의 보고
‘보전·개발’ 조화 이룰 정책 수립 및 남북 공동 종합보전계획 세워야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대국민 공감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환경일보는 KEI(한국환경연구원)와 협업으로 탄소중립, 그린뉴딜, 기후변화, 미세먼지 등 국민 체감 환경 현안에 대해 독자 여러분이 보다 이해하기 쉽고, 바른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주 1회 ‘KEI 지속가능 TV’ 연재를 마련했습니다. KEI ‘말하는 보고서’, ‘듣는 보고서’ 영상 콘텐츠를 지면과 온라인 기사로 재구성해 환경보존에 대한 공감을 여러분과 함께 키워 가고자 합니다.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하던 곳은 사라질 뻔했던 야생동물들의 피난처가 됐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Alan Weisman)은 저서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에서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DMZ는 인간의 손때를 피해 간 한반도에서 거의 유일한 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국립생태원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이 일대의 동부해안, 산악, 서부평야 등 3개 권역의 생태계를 조사·분석한 결과를 기반으로 총 5929종의 야생생물이 DMZ에 서식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요. 이 중엔 멸종위기종 101종도 확인됐습니다. 멸종위기 Ⅰ급인 사향노루, 수달, 검독수리, 노랑부리백로, 수원청개구리 등을 비롯해 Ⅱ급에 속하는 담비, 삵, 검은머리물떼새, 구렁이, 금개구리, 가는돌고기 등 다양했죠.
국립생태원은 “전체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37.8%가 이곳에 살고 있다”며 “멸종위기에 속한 종들의 서식처와 생태를 연구해서 DMZ가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생물보호지역이 될 수 있도록 기초자료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생물다양성을 기반으로 생태계 지속가능의 완충 역할을 해 온 DMZ이지만 앞으로의 모습은 쉽게 예견할 수 없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이곳은 남과 북 어느 한쪽에서만 관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만큼 외부환경이라는 변수에 민감합니다.
또 오랜 세월 인간의 간섭이 통제돼 왔다는 특성은 여러 기대효과를 불러 모으고 있죠. 정부는 2019년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 변경안’을 발표하면서 ▷남북교류의 협력기반 조성 ▷생태평화관광 활성화 ▷지역주민의 정주여건 개선 ▷균형발전기반 구축을 4가지 핵심전략으로 꼽았습니다.

여기엔 DMZ 접경지역에 철도와 도로를 깔고 공단을 조성하는 구상도 실렸는데요. 이수동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는 “DMZ의 발전계획은 보전과 보호보다는 산단, 공단의 개발에 방점을 두고 있다”며 “주요 서식처들이 훼손돼 장기적으로는 DMZ의 생태축을 단절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아울러 “환경보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를 기반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국립공원, 습지보호지역 등 법정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것부터 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생태계 지속가능의 보고 DMZ를 둘러싼 기대심리
접경지역 개발 및 보전 계획 등 세밀한 종합계획 필요
생물다양성 보전 계획 수립 시 ‘월동지 보전’ 최우선 고려해야
그렇다면, 자연을 위해 지금 그대로 놔두는 것이 최선일까요. 인근 지역주민들의 생활여건을 감안하면 꼭 그래야 한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습니다. 군사시설보호법의 적용으로 주민들은 생활편익에 제약을 받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2018년 접경지에 속한 지자체들의 조사에서 인제, 화천, 양구, 철원 4곳의 도시가스 보급률은 0%였으니 말이죠.
KEI는 지난해 6월 ‘DMZ, 개발이냐 보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제목의 영상보고서에서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위한 정책적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보전과 개발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보전과 개발의 충돌로 사회적인 갈등과 비용이 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지자체 단위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에서 발표되는 여러 계획들을 포괄할 ‘종합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DMZ 및 접경지역의 생물다양성 보전 계획을 수립할 때 최우선 돼야 할 요소로 ‘월동지 보호’를 꼽았습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나 천연기념물 등의 월동지가 되는 잠자리, 휴식처, 먹이터의 보호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KEI는 크게 3단계의 연구 로드맵을 통해 구체적인 해법을 설명했습니다. 우선 농업, 어업, 축산업 등의 주민생업을 장려해 동물들의 먹이터를 확보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소득과 생활을 안정화시킬 보호 방안이 마련돼야 생태계도 보호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입니다.
국유지나 공기업 소유지부터 보호해 가면서 나머지 사유지도 보호가치가 높은 순으로 매입해 관리해야 하며,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과 같이 서식지의 생태적 특성을 연구하고 상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지역 단위의 연구협력 체계를 만드는 것이 다음 과제였습니다. 보호지역을 지정하는 등 토지보호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이어진 중장기적 단계로 언급됐죠.
아울러 남북을 아우르는 종합보전계획의 수립이라는 더 큰 관문이 있었는데요. KEI는 먼저 국제협력을 강화해 가면서 보전을 위한 협력기반을 구축하고, 국가공원 지정을 위한 종합계획부터 함께 세워가는 로드맵을 그렸습니다. 이를 거쳐 최종적으로 ‘남북 DMZ 및 접경지역 보전 종합계획 수립’과 ‘접경지역 특별법 제정’이라는 결과물을 기대했습니다.

DMZ와 접경지역은 우수한 자연생태계와 희귀 동식물의 보고입니다. 그 독특한 자연환경은 사진과 방송 등을 통해 세계인들에게도 익히 잘 알려져 왔죠. 특히 지난 1973년부터 국제두루미재단(International Crane Foundation)을 만들어 DMZ의 두루미를 조사하고 보전하는 데 기여해 온 캐나다 출신 조지 아치볼드(George Archibald) 박사의 사례는, 이곳의 생태적이고 학술적인 가치를 더욱 일깨워 줍니다. 외국인마저 매료시켰던 가치가 미래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요.
오일찬 KEI 자연환경연구실 부연구위원은 “미래세대에도 값진 선물이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수립 과정에서 애정 어린 관심을 쏟아야 한다”며 “단기와 중장기적 계획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조화로운 보전과 개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